이병욱(작가, 춘천문인협회 회원)

1987년 가을이었을 게다. 그즈음은 자가용차는 꿈도 못 꾸던 때라서 출퇴근을 택시 합승이나 시내버스로 했다.

그날 나는, 어둑해지는 명동 부근 시내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사는 동네(후평동) 쪽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이병욱 씨.”

뒤돌아봤더니 최종남 선배님이었다. 선배님은 닭갈비 골목 어귀에 서 있었다. 웃으며 내게 제의했다.

“우리, 소주 한잔할까요?”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정식으로 인사 나눈 적은 없었으니, 모처럼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나는 사양했다. 부리나케 집에 가서 애를 봐야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무릎도 안 좋은 몸으로 종일 애 보느라 힘들던 때였다. 아내는 직장생활에 집안 살림까지 하느라 경황이 없었다.

사실 그날 내가 선배님의 제의를 받아들였다면 닭갈비 골목의 어느 집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친분이 시작됐을 게다. 그즈음만 해도 나는 술을 마다하지 않았으니까.

참 아쉬운 기회였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강산이 세 번 바뀐 2019년 여름에, 최 선배님을 김유정 문학촌에서 학생 글짓기 심사위원으로 만났다. 선배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제는 몸이 안 좋아 술을 멀리하는 신세다. 결국 술 한 잔 나눠보지도 못한 채 각자 노후를 맞은 셈.

어쨌든 모처럼 만난 귀한 순간을 나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선배님, 저하고 사진 한 장 찍어요.”

그래서 찍은 사진(김금분 시인이 수고했다.)을 내 블로그에 간단한 글과 함께 올렸다. (참고: 무심 이병욱의 문학산책 중 ‘최종남 선배님’) 

나중에 선배님이 내 블로그에 들어와 그 사진과 글을 보고는 그리도 재미있어할 줄이야. 내게 직접 전화까지 하며 즐거워했다. 솔직히 나는 선배님이 별로 말이 없는 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므로, 적잖이 놀랐다.

열흘 뒤인가 또 김유정 문학촌 행사장에서 선배님을 보게 됐다. 그런데 안색이 아주 안 좋았다. 창백했다. 그런 중에도 후배인 내가 앉을 자리를 마련해주려고 애썼다. 행사에 초대받은 손님들이 많은 탓에 자리가 부족했던 것이다. 지금도 기억난다. 선배님이 겨우 내는 목소리로 이리 말했다.

“여, 앉아.”

나는 다른 분과 인사하느라 선배님의 그 자리에 앉지 못했다.

그 후 얼마 안 돼 강대 병원 중환자실에서, 아픈 몸으로 누워 있는 선배님을 보게 됐다. 산소호흡기 줄까지 꽂은 선배님이 나를 보고는, 가까이 오라 손짓했다. 가까이 다가간 내게 간신히 말했다.

“우리는… 너무… 늦게… 만난… 것 같아.”

한 달 후 돌아가셨고 나는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최종남 선배님.

실제 만남이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아직도 나는 선배님의 별세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다. 조금씩 실감하고 있다. 어젯밤, 찬비 내리는 길을 걷다가 문득 ‘다시는 최종남 선배님을 만날 수가 없구나!’ 깨달았다. 별세(別世) ― 사는 세상을 달리하니까.

최종남 선배님. 명복을 빕니다.

* 최종남 소설가 : 장편소설 ‘겨울새는 머물지 않는다’ 단편소설집 ‘회색판화’ ‘단둥역’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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