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큰롤 50년 역사를 빛낸 50 거목들

오티스 레딩(Otis Redding)

오티스 레딩(Otis Redding)

소울음악의 빼놓을 수 없는 신화적 존재로 한때 ‘소울의 왕(King Of Soul)’으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멤피스의 음반사 스택스 특유의 반 박자 늦은 백 비트 곡이 여타의 소울가수와의 차별점이다. 

흑인 소울가수 가운데 드물게 곡을 직접 쓴 싱어송라이터였으며, 아레사 프랭클린의 67년 시그니처 송 <Respect>도 그가 써서 65년에 발표한 곡(차트 순위 35위)이다.

롤링 스톤스의 <(I Can’t Get No) Satisfaction>을 리메이크하는 등 60년대 소울과 록이 동반자 사이임을 증명했다. 실제로 그는 출연진이 백인뮤지션 일색이었던 67년 몬터리 팝 페스티벌에 출연해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1941년 조지아주 도손출신으로 샘 쿡(Sam Cooke)에 영향을 받아 가수로 입문했다. 전성기였던 67년 12월 비행기 추돌사고로 27살에 요절했다. 유작으로 68년 전미차트 정상을 밟은 <(Sittin’ On) The Dock Of The Bay>는 톤을 낮춘 소울 발라드의 수작이다. 이외에 <I’ve Been Loving You Too Long(Stop Now)>와 <Try A Little Tenderness>도 빼놓을 수 없는 명곡 레퍼토리이다.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예나 지금이나 소울의 여왕(Queen Of Soul)으로 통하는 팝 역사상 최고의 소울 여가수. 여러 조사기관이 20세기를 정리하면서 실시한 가수부문 설문에서 일제히 1위로 선정되었을 만큼, 소울뿐 아니라 대중음악을 통틀어도 최고 가창력의 가수로 손꼽힌다.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영혼이 실린 가스펠과 대중적인 리듬 앤 블루스의 결합을 노래로 완성한 인물이기도 하다. 콜럼비아레코드 회사에서 소울의 메카가 된 어틀랜틱으로 이적해 데뷔곡인 <I Never Loved A Man(The Way I Love You)>를 앨러바마 소재의 머슬 슐즈 스튜디오에서 취입하던 날, 같이 참여한 연주자들이 그의 환상적인 노래 솜씨에 경악한 나머지 녹음을 마치고 영광을 만끽하기 위해 어울려 춤을 추었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1942년 멤피스에서 태어나 디트로이트에서 성장했다. 두 차례의 이혼으로 사생활은 평탄하지 못했으나 80년대 중반 <Free Way Of Love>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그래미상을 15차례나 수상했고 90년에는 그래미의 ‘살아있는 전설’ 상을 받았다. 8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여성 뮤지션 최초로 입적된 기록도 갖고 있다. 대표작은 67년 디트로이트 흑인폭동 당시 시위대 찬가로 불린 <Respect>를 비롯해 <Chain Of Fools>, <Ain’t No Way> 등이 있다.

DJ 최인(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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