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커먼즈필드 안녕하우스 토론회
비영리 스타트업 ‘느린소리’ 활동 시작

지난 11일 커먼즈필드 춘천 안녕하우스에서 강원 지역 최초 ‘느린 학습자’(경계선지능인) 지원 조례 및 정책 제정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느린 학습자’란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서 경계선 지능, 즉 지능지수(IQ) 71~84 사이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개인 활동(화장실·식사), 사회활동, 대인관계, 단순 직업 활동 등의 전반적인 수행은 가능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복잡한 활동에 어려움을 느낀다. 외관상으로는 지적 장애가 아닌 정상인으로 보이고 의사소통도 가능하기에 주변에서는 고의적인 행동으로 오해를 받는다. ‘느린 학습자’ 아동들은 일반적인 아동들이 경험하는 교육과 사회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치료와 교육을 통해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강원 지역 최초 ‘느린 학습자’ 지원 조례 및 정책 제정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는 비영리 스타트업 ‘느린소리’가 주최하고 춘천사회혁신센터가 주관했다. ‘느린소리’는 지난 1월 춘천사회혁신센터의 ‘비영리 스타트업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4개월째 멘토링과 역량 강화 교육을 받아왔다. ‘느린소리’는 “느린 학습자들의 목소리를 듣겠습니다”를 모토로 느린 학습자를 위한 ‘원스탑(one-stop)’ 치료 및 교육 프로세스 지원을 목표로 삼고 있다.

토론회가 열린 배경은, ‘느린 학습자’는 기존 발달장애로 등록되는 기준(지능지수 70 이하)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정책적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으며, 다른 종류 학습장애나 정신질환 등과 혼동되거나 복합적인 증상을 나타내어 제대로 된 치료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후천적으로 가정환경 및 교육환경 등의 문제로 느린 학습자가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조기 발견과 중점 지원이 꼭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지역 안팎의 전문가들이 참석하여 ‘느린 학습자’ 지원 정책의 필요성과 정책 방향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이재경 박사(한신대학교 민주사회정책연구원)가 발제자로 나서 ‘느린 학습자’ 지원방안 및 정책 제안을 역설했다. 이 박사는 “서울시 조례 등에 명기된,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용어는 ‘느린 학습자’를 부정적으로 인식시킨다. 정책화 과정에서 ‘느린 학습자’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 사회에서 “영유아기의 느린 학습자를 답답하고 눈치 없는 아이로 무시하는 풍조가 조기 발견을 어렵게 한다. 특히 선행학습, 입시 위주 교육이 느린 학습자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또 부모와 형제자매의 오인으로 억압적인 가정교육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며 성인기까지 이어져 자립을 방해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이어서 “느린 학습자의 학교 중도 탈락률이 일반 학생보다 10배 이상 높다. 특히 이들은 노동 착취나 성매매, 절도 등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특히 청년기 느린 학습자 중 대학에 진학했더라도 대학을 끝까지 마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실업과 아르바이트에 머물거나 직장을 얻더라도 부당대우와 저임금에 시달린다. 자립을 위한 준비나 지원은 미비하다”라고 꼬집었다.

이 박사는 현 ‘느린 학습자’ 조례의 한계도 지적했다. “서울·경기·고양·광주광역시·구로구·노원구·동대문구 등 지원 조례의 양적 확대는 긍정적이나 대부분 권고 조항이다. 지원대상이 학생 위주이며 지원의 구체적 내용이 부족하다. 또 지역사회 협력·자립 지원·학교연계 등의 핵심내용이 빠졌다. 중앙정부 입법화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현실에서 교육·복지·평생학습의 세 경로를 통해 지자체와 지역사회에서 정책을 서둘러 마련하는 게 효과적이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 “학부모 협력, 워킹그룹 협력, 지역 정치인과 교류,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참여형 연구, 공론화 등의 단계를 거쳐 지역사회에서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토론회는 ‘느린 학습자’ 지원 조례가 담아야 할 주요 내용으로 △가족지원(정보제공·가족 관계 개선) △학교 내 지원 시스템 구축 △지역사회 인식 개선 및 공감대 형성 △지역사회 돌봄 적용 △전용 교육 공간 마련 △청소년기 느린 학습자 커뮤니티 공간 마련 △맞춤형 진로직업교육 강화 △느린 학습자 종합지원센터 조성(생애주기별 서비스) △지역 내 느린 학습자의 정확한 숫자 등 실태 파악 등이다.

토론회는 최수진 ‘느린 소리’ 대표, 김태민 사무국장(사단법인 늘봄청소년), 이보람(특수교사 및 유튜버), 김규아(느린 학습자), 손정환(강원교육연구원 장학사) 등이 참석하여 다양한 정책 제안과 해결방법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한편 ‘느린소리’는 토론회를 시작으로 오는 6월부터 ‘느린 학습자’ 초등 방과후 프로그램 운영, 조례제정 공론장 등 ‘느린 학습자’ 지원체계 마련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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