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창수(시인)

대통

데퉁맞다, 데퉁스럽다, 라는 말이 있다. 어릴 때 많이 들어서 (내가 많이 들었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 경상도 사투리인 줄 알았는데 엄연한 표준말이다. 사전에서 찾으면 “말과 행동이 거칠고 미련하다”고 나온다. 어제 9시뉴스로 새 대통령의 취임식 장면들을 보면서 자꾸 그 말이 생각났다. 대통령의 ‘대통’과 연결지은 말장난일 게 뻔하지만, 보고 있으면 정말 그런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한다. (사람을 괜히 곱잖게 보거나 시비를 일삼는 짓 따위와는 거리가 멀게 살았는데 이즈음 심사가 자꾸 비틀려서 괴롭다. (☹)

대통령의 대통(大統)은 “최고 권력의 계통”을 가리킨다. 영어로는 “Royal line”이다. 이때 통(統)은 “통치하다”의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대통령의 ‘통’은 계통보다는 통치에 무게중심이 잡혀 있다. 영어로 대통령은 알다시피 President(프레지던트)다. “지배하다/통솔하다”는 뜻의 preside(프리자이드)에 기반한다. President를 나누면 pre(before) + sid(sit) + ent(man), 앞에 앉아 있는 사람, 즉 “앞장서는 사람”이다. 통치의 개념이 강화되어 있지만 ‘솔선수범’으로 해석해야 옳다. 기실, 솔선수범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맨 앞에 선다는 것은 온갖 풍파를 맨 먼저 받는 사람이란 얘기고, 총알이 날아오면 맨 먼저 맞는 사람이라는 얘기다. 가령, 세계 최저의 빈국에 속하지만 행복지수는 세계 최상인 부탄의 국왕이 국경지역에서 인도와 분쟁이 일어났을 때 총을 들고 맨 앞에 섰는데, 이것이야 말로 ‘프레지던트’의 진의이며 진수다.

우리나라 대통령 가운데 대통령의 진짜 의미에 걸맞은 대통령이 누구였는지, 몇 사람이나 있었는지, 돌아보면 갑갑해진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사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맨 첫 대통령이란 사람이 국가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 앞장서기는커녕 국민들을 총알받이로 세워놓고 꽁무니를 빼기에 바빴으니 . . . 따지고 보면 새 대통령이 취임을 하고 이제 겨우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시비를 거는 것도 데퉁스런 짓이다. 중국속담에 “길이 멀면 말의 힘을 알게 되고(路遙知馬力), 시일이 오래 되면 인심을 알게 된다(日久見人心)”고 했다. 이제 길을 떠나기 시작했으니 어떤 말인지 알기 힘들고, 이제 겨우 이틀째이니 인심 또한 아직은 후하다. 그저 축수 한 마디만 던진다. 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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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퉁 #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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