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춘천지역 대학생 20여 명이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을 기념하여 광주를 방문했다. 춘천 대학생 근현대사 역사동아리 ‘날갯짓’과 ‘강원대학교 생활도서관’ 학생들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강원대학교 농업자원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이해원입니다. 저는 이번 전국 대학생 차원에서 진행하는 광주기행을 춘천지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직접 기획을 했습니다. 우선 저희 기행 활동 내용을 지역 주간신문 《춘천사람들》이 제안해 알릴 수 있게 되어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참가단위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대학생 ‘날갯짓’은 ‘내 대학 생활이 역사가 된다면?’이라는 구호 아래 근현대사 역사를 우리의 대학생활 속에서 직접 몸으로 활동하며 채워나가는 춘천지역 대학생 근현대사 역사동아리입니다. 또한,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춘천지역 고등학생 자발적 결사체 고등학생 ‘날갯짓’을 멘토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춘천교대, 한림대, 강원대학교에서 각각 부원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강원대학교 생활도서관’은 진보적 학문을 탐구하고 대학생들에게 이러한 가치를 공론화하고, 이끌어내는 강원대학교 공식 학생자치 기구입니다.

:::  들어가며

5·18을 부르는 명칭들은 다양합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5·18을 광주사태로 부르는 경우가 있고, 그 외에 5·18폭동, 5·18학살, 5·18민주화 운동, 5·18 민중항쟁이라고 부릅니다. 각기 다른 시각에서 5·18을 다른 성격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5·18이 실제로 있었던 광주를 직접 두 눈으로 두 발로 찾아가 5·18의 올바른 가치에 대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왔습니다. 2박 3일 짧은 일정이지만, 그 속에서 5·18의 역사와 가치를 통해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서 다시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  5·18 그 진짜 이름을 찾아서

광주에 가기 전 우리는 5·18의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역사동아리 ‘날갯짓’은 2주에 걸쳐 ‘영화로 보는 5·18’, ‘5·18 광주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라는 주제를 가지고 잠시 그때 그곳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강원대학교 생활도서관 또한 5·18 소설인 한강 작가 《소년이 온다》 책을 2주에 걸쳐 책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또한, 광주 순례단의 사적지 해설을 도와주는 해설단을 따로 뽑아서 해설단 학습과 광주 순례 일주일 전 사전 답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5월 13일 금요일 오후에 450km라는 장장 5시간이 걸리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대학생들을 위해 다행히 (사)춘천의병마을에서 기꺼이 버스를 빌려주었습니다. 늦은 밤 숙소에 도착했고, 다음 날 긴 일정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  5·18 열사를 바로보다

화창한 5월 봄날 우리는 아침부터 5·18 영령들이 모셔져 있는 5·18 묘지를 방문했습니다. 5·18 묘지는 크게 두 군데로 나누어집니다. 5·18 당시에 직접 희생당한 분들이 모셔져 있는 5·18 국립묘지(신묘역), 5·18 이후 5월 정신을 계승하여 돌아가신 열사분들이 모셔져 있는 민족민주열사묘역(구묘역)입니다. 구묘역부터 둘러보았습니다. 민족민주열사묘역에는 87년 6월 항쟁 때 돌아가신 이한열 열사에서부터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에 물대포 직사에 의해 돌아가신 백남기 열사, 91년 노태우 정권에 맞서 열사 투쟁, 열사 정국 때 돌아가신 박승희, 강경대 열사를 비롯한 10명의 열사,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외쳤던 박종태 열사, 5·18 이후 통일 운동에 뛰어들었던 수많은 열사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5·18 민중항쟁 당시 직접 독재 권력에 저항하거나 무참히 학살당한 분들의 5·18 국립묘지도 둘러 보았습니다. 광주에서 가장 먼저 희생당한 당시 청각장애인 김경철 열사, 27일 도청진압 작전에서 끝까지 도청을 사수 했던 윤상원 열사, 5·18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썼었던 김의기 열사들을 보면서 독재 권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셨던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  5·18 역사를 바로보다

묘역 방문의 오전 일정을 마치고, 전국에서 5·18을 기억하기 위해 찾아온 5·18 전국 순례단 대학생 친구들과 5·18 영령들을 참배하면서 전남대학교로 향하였습니다. 전남대학교는 5·18 진압이 가장 먼저 시작된 발원지였습니다. 광주 곳곳에는 5·18 사적지 표시가 있는 비석들이 있는데, 전남대학교 정문이 처음인 1번 사적지입니다. 가장 치열하게 저항했고, 대학생들이 앞장서서 항쟁을 주도하고 맞선 역사적인 장소들을 둘러 보았습니다. 전남대학교 내 ‘민주의 길’이라는 5·18과 관련된 조형물, 벽화들이 마련되어 있는 박관현 언덕, 윤상원 숲, 김남주 뜰, 교육지표 마당, 벽화마당, 5·18 광장, 박승희 정원 등 수많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적지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전남대학교 방문을 마치고 우리는 집단 발포와 도청진압의 장소였던 금남로 일대를 돌아보았습니다. 옛 도청 앞을 중심으로 학살된 시신들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쓰였던 상무관, 분수대 그리고 중앙으로 길게 뻗어있는 금남로, 헬기 사격의 총탄 자국이 발견된 전일빌딩 245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  5·18 그때 사람들이 바라던 세상을 바로보다- ‘대동세상’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은 도청에서 금남로에 운집해 있던 시민들을 향해 집단 발포를 합니다. 수많은 시민은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 갔습니다. 보다 못한 시민들이 경찰서와 무기고를 점거하였고, 시민군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계엄군은 도청에서 물러납니다. 21일에서 27일까지 광주는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당합니다. 당연히 도시의 행정기능은 마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광주의 시민들은 직접 자치를 통하여 혼란스러울 수 있었던 도시 행정을 완벽하게 스스로 해내었습니다. 광주를 봉쇄한 6일 동안 단 한 건의 절도, 폭행 없이 완벽한 치안을 유지했습니다. 각자 집에서 쌀을 가져와 주먹밥을 시민들은 서로 나누었습니다. 집단 사격과 잔악무도한 진압에서 부상당한 사람들이 피가 모자라자 사람들은 자신의 피를 나누어주었습니다. 이 6일을 사람들은 ‘대동광주’, ‘해방광주’라고 합니다. 우리는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고 배우지 않는 역사를 이번 기행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과연 광주의 시민들이 그토록 원했던 요구들, 삶들, 민주주의의 열망들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깊은 느낌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저녁에는 전국에서 함께 모인 800명의 대학생과 함께 문화제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처음 보는 사람들임에도 우리는 서로의 어깨와 손을 맞잡고 금남로를 그날처럼 뛰어다녔습니다. 5·18이라는 역사를 그리고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함께 했던 42년 전 수많은 사람과 함께 하나의 구호 아래에서 전국 대학생들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  5·18 민중항쟁, 그리고 갑오에서 오월로, 오월에서 통일로

이번 기행을 통해서 단순히 민주화 운동 이상의 광주 시민들이 원했던 세상과 바꾸기 위해 끝까지 싸웠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건, 학살이라는 단순하게 수동적인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 주체적이고 민주시민다운 모습들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기 위한 항쟁의 성격이 더 맞는 말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5·18 국립묘지에는 부조벽화가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의 저항에서부터 동학농민운동, 3·1운동, 광주학생항일운동, 4·19혁명, 5·18민중항쟁 그리고 마지막 벽화의 내용은 통일 세상입니다. 의병, 동학농민운동, 3·1운동, 4·19혁명, 5·18민중항쟁에서 우리가 바라볼 가치는 사람이 중심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동학농민운동에서 바라본 인본주의, 반외세, 반봉건을 통해서 모두가 평등한 인간이 되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의 노력이 그 역사를 타고 5·18에서도 ‘대동광주’, ‘해방광주’를 통해 계승되었다는 점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럼 그다음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은 결국 ‘통일로’ 입니다. 5·18의 역사를 왜곡하려는 사람들은 항상 분단의 상황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광주도 마찬가지로 좌익세력, 빨갱이, 북한에서 투입된 군인이라는 명목으로 학살의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이러한 학살이 자행될 수 있었던 그 본질적인 문제에서 통일에 대한 가치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  마치며

그 밖에 대학생 친구들이 함께 어울려 활동했던 프로그램도 있었습니다. 바로 5·18 골든벨이었습니다. 우리 순례단도 참여했습니다. 전국의 대학교에서 150명의 사람들이 5·18에 대한 문제를 맞히며 최후의 1인까지 남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강원대학교에 학생들이 최후에 5인 중에서 무려 3명이 남게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준우승에 그쳤지만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저희 대학생들의 광주 일정을 위해서 힘써주신 고마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강원 민주재단’, ‘강원대학교 민주동문회’, ‘(사)춘천의병마을’, 그 외에 기꺼이 후원해주신 춘천시민분들이 함께 도움을 주셨습니다.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기행을 하게 되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해원(강원대학교 재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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