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 (전 정의당 강원도당 부위원장)

선거철이다. 정치에 처음 관심을 두게 되었을 때가 떠오른다. 십여 년 전 노숙인 인권 활동을 했었다. 서울시청과 시의회 사이 지하도에 머물고 계신 분들을 자주 뵈었다. 당시 시장은 ‘디자인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세금을 토건 사업에 쏟아붓던 중이었다. 급기야 시장과 시의원들은 ‘디자인 서울’을 위해 얼마 되지도 않는 노숙인 의료구호비를 반 토막 내버렸다. ‘없는 사람의 생명줄인 의료구호비마저 빼 써야 할 정도로 시급하고 중대한 일은 과연 무엇일까?’ ‘왜 이들은 미래를 핑계로 바로 옆의 고통받는 시민을 외면하는가?’ 지하도를 그렇게 부지런히 오가면서도 우리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정치인들이 얄미웠다. 

답답함은 지상에서도 계속되었다. 서울시청 근처 대한문에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장이, 맞은편 환구단에 재능교육에서 해고당한 선생님들의 농성장이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부산 영도 하늘에는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가 사측의 정리해고에 맞서 크레인에 올라가 있었다. 돈 없고 배경 없는 이들은 지하에서, 지상에서, 그리고 하늘에서까지 고통받고 있는데 정작, 이 아픔과 고통을 해결해야 할 기성정치인들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사회를, 정치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앞서 활동하고 있던 친구의 권유로 진보정당에 들어갔다. 잘 보이지 않는 사회 구석구석에서 제 역할을 하는 바다에 반짝이는 소금 같은 사람들을 만났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를 바꾸어야 하고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는 좋은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 너무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이 당연함을 실천하는 일, 작은 진보정당을 많은 사람이 인정하는 원칙 있고 실력 있는 정당으로 만들어내기는 참 어려웠다. 당시에 당 안에서 만난 동료들은 이 힘든 일을 묵묵히 해나갔다. 이들은 이 활동을 ‘진보정당 운동’이라고 했다. 낯설고 재미없는 이 말이 왜 그렇게 끌렸던지, 나는 그해 지역 당협 상근을 지원했다. 이후에도 줄곧 사회운동과 진보정치의 언저리에서 일했다. 

3년 전 춘천으로 이사를 왔다. 이곳에서도 당 활동을 하는 중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선거가 춘천에서 맞는 세 번째 선거다. 선거는 늘 힘들지만, 선거 시기에 후보도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더 힘들다. 그래서 이번에도 표찰을 걸고 밖으로 나간다. 다른 많은 후보와 운동원들이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듯, 나 역시 지금 길거리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요즘 시민들을 만나면 선거에 대한 피로도가 굉장히 높다는 걸 느낀다. 상식선을 따라가지 못하는 기성정치권에 화가 많이 나 있다. 무언가 다른 정치를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진보정당에도 시선이 곱지 않다. 돌아보면 지난 몇 년간 진보정당이 진보정당다운 원칙과 소신 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시민들에게 많은 실망감을 주었다. 진보정당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시민들에게 너무나 죄송스럽고 면목이 없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선거로 춘천의 거리가 시끌시끌하다. 지역의 일꾼을 뽑는 이번 지방선거가 끝나면 춘천은 어떤 변화를 맞게 될까? 부디 이번에는 춘천의 행정부와 의회가 시민들의 다양한 의사를 골고루 반영하는 민주적인 모습으로 거듭나기를, 그 길에 진보정당도 제 몫을 잘해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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