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 류 근

선생님, 제게 글자 쓰기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덧셈, 뺄셈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구구단 외우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토끼 키우기, 닭장 만들기, 찰흙으로 연필꽂이 만들기, 색종이로 카네이션 만들기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미끄럼틀에서 떨어졌을 때 업고 병원에 가 주셔서 고맙습니다.

소풍 가는 길에 롯데 이브껌 주셔서 고맙습니다.

졸업식 날 사진 찍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박인환 시집 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집에 불러서 오뚜기 카레 먹여주셔서 고맙습니다.

전학 가는 날 울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겨울에 백일장 나갔을 때 낮술 사주셔서 고맙습니다.

담배 피우다 들켰을 때 라이터만 뺏고 안 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파출소에서 뒤통수만 한 대 때린 후 데리고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다 알면서 속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실패에 슬퍼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성공에 진심으로 기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게 선생님이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바닷물에 잠겨 죽을 때에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우리 곁에 계셔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우리들의 선생님!


오전에, 치과 대기실에 앉았는데 방금 치료받고 나와서 뭐가 억울했는지 빽빽 울던 대여섯 살 소녀가 돌연 울음을 그치더니 묻는 거였다. 엄마, 눈물이 진짜 짜다. 눈물은 왜 짜지? 나는 저 엄마가 “눈물은 왜 짠가”에 대한 대답을 과연 함민복 시인처럼 할 거신지 다른 버전으로 할 거신지 몹시 궁금하여 조바심을 내며 귀를 기울였다. 과연 소녀의 엄마는 0.5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였다. 눈물에 염분이 섞여 있으니까 그렇지. 그거 지난번에 읽어 준 책에 나왔던 거잖아. 소녀는 아조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거였다. ‘염분’이 뭔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데스크에서 뭔가를 적고 있던 간호사 샘이 마스크를 올리며 대답했다. 꼬마야, 눈물이 짜지 않고 달면 넌 그거 먹으려고 하루 종일 울 거 아냐. 그래서 하느님이 조금만 먹으라고 짜게 만드신 거야.

아, 순간 나는 치통마저 잊은 채 그 간호사 샘에게 달려가 뽀뽀해 주고 싶었다. 연애 걸고 싶었다. 눈물이 짠 것은 조금만 먹으라는 거시다. 하느님이 사람들 하루 종일 울지 말라고 그렇게 만든 거시다. 그래서 나는 치통을 오래 앓기로 결심했다. 그 예쁜 간호사 샘 오래 보러 댕겨야 하니까.

 

류근(시인)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