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창수(시인)

도저한 세계

코로나가 한창 유행할 때 의심증상만 보이던 지인이 지난주에 확진됐는데, 침 삼키기가 곤란할 정도로 몹시 앓는다는 얘기를 듣고 카톡을 보냈더니, 내게 부적을 주문했다. 같은 글씨라도 부적에는 공력이 더 들어가 값이 높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부적을 청탁하는 아름다운(!) 마음씨에 감동해 “혹 원하는 문구가 있느냐?” 물었더니 한문공부 많이 한 사람이라 그런지 단번에 “무하유지향”이란 답이 왔다. 엊그제 이른 아침 목욕재계를 하고 종이를 길게 펼치고 쓴 다음에 스캔을 받아뒀다가 보내줬는데 희한하게, 아니 당연하게, “아침에 일어나니 개운해진 게 이유가 있었네요”라는 답이 왔다.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鄉)’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란 뜻으로, 장자의 무위자연 철학을 상징하는 구절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이 올바르면 뭔가를 억지로 이루려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이를 본받아 절로 바람직하게 변화한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장자》 안에 여러 번 나오는데, ‘내편’ ‘응제왕’에 나오는, 은양을 지나던 천근이 요수 상류에서 무명인을 만나 나눈 대화에 이 말의 진수가 담겨 있다. 천하를 다스리는 일에 대해 묻는 천근을 꾸짖으며 무명자가 한 “조물주와 막 벗이 되었는데, 싫증이 나면 새를 타고 육극 밖으로 나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노닐다가 광막한 들판에 머물 생각이다”는 그 말. 참으로 가고 싶은 곳이다.


춘천으로 이사 온 지 30년. 춘천사람, 강원도사람으로 30년을 사는 동안 총선과 지선을 치를 때마다 욕을 몇 바가지씩 얻어먹었다. 지난 선거 딱 한 번이 예외였는데, 이번 지선이 두 번째 예외가 되길 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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