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란 춘천국제인형극학교 운영본부장

춘천은 인형극 축제와 인형극장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 인형극의 최대 거점 도시로서 30년 이상 한국 인형극 예술의 정체성을 가꾸고 발전시켜 왔다. 이곳에 올해 8월 마침내 ‘춘천국제인형극학교(CSOP:Chuncheon International School of Puppetry)’가 탄생한다. 

‘춘천국제인형극학교’는 미래예술과 문화산업 발전에 기여할 인형극특화 글로벌 인재 육성을 목표로, 인형극 제작·연구·교류를 위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을 갖춘 국내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의 전문 인형극학교이다. 8월 개교를 앞두고 교사(校舍)로 쓰일 춘천시 ‘청소년 여행의 집’ 건물 리모델링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으며, 신입생 모집을 시작했다. 이에 신미란 춘천국제인형극학교 운영본부장을 만나 학교의 탄생 배경과 진행 상황 그리고 비전을 들었다.

Q. 중책을 맡고 있다. 시민들에게 본인을 소개해달라.

서울이 고향이고 20대 중반에 프랑스로 가서 20여 년 동안 살았다. 파리 국제 연극학교 ‘자끄르꼭’(Ecole Internationale de Théâtre Jacques Lecoq)을 졸업하고, 파리 8대학(Vincennes Saint Denis) 과 Arras 대학에서 연출 실기와 예술교육정책을 전공했다. 파리에서 극단 ‘사람나무’와 프로덕션 ‘컬처앤퍼포먼스’를 설립하고 연극 작업과 공연연출, 전시기획을 하며, 프랑스 TV 해양 휴먼다큐 프로그램에서 한국 편 취재기자 일을 병행했다. 

춘천과의 인연은 1998년 아비뇽축제에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받았을 때, 한국의 1세대 문화기획자인 故 강준혁 선생(전 춘천인형극제 이사장)이 우리 전통과 현대예술을 소개했는데 그때 선생의 조감독으로 활동한 것이 인연이 됐다. 

Q. 춘천인형극제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건 어떤 계기였나?

우선 인형극학교는 2014년에 작고하신 전 (재)춘천인형극제 이사장 강준혁 선생의 유지(遺志)였다. 춘천이라는 도시에 인형극 축제와 전용극장, 인형극박물관 설립을 주도해오면서 끊임없이 세계인형극의 메카인 프랑스 샤를르빌 시를 주목하셨는데, 특히 그곳의 국립인형극학교인 에스남(ESNAM) 같은 인형극학교 조성의 필요성을 자주 언급하셨다.   

2015년 당시 이재수 시의원이 이사장을 맡으면서, 그 뜻을 이어받아 “우리가 실행해보자, 춘천에 아시아 최초의 인형극학교를 만드는데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Q. 하지만 당시 인형극학교 건립은 쉽지 않았다.

2015년 춘천시의 추경예산으로 처음 세 축제에 예술교육기금이 균등하게 지원되면서, (재)춘천인형극제 이름으로 ‘아시아인형극 학교 설립을 위한 아카데미’라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다. 국내인형극 현황 파악과 동시에 세계 최고 명문인 에스남(ESNAM)을 벤치마킹했고, ‘샤를르빌 세계인형극축제’에 선보인 30여 개의 작품 관람과 리서치, 섭외 등을 통해 세계인형극 마스터들을 선정하고 프로그램을 구성하면서, 에스남과 인형극제 간의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인형극 선언문’이라는 부제를 만들어 〈World/Origin〉이라는 공연 한편도 초청했다.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후 인형극 학교부지와 재원 마련 등이 불확실했고, 함께 도모해 나갈 조직력의 부재 등을 이유로 인형극제를 떠났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춘천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이어져 인형극제에서 해마다 2번씩 2주간의 아카데미 프로그램은 그대로 유지되어 오고 있다. 

(위부터) ‘춘천국제인형극학교’ 입면도 (사진 제공=춘천시) , 리모델링 중인 ‘춘천시 청소년 여행의 집’ (사진 제공=춘천국제인형극학교),  ‘춘천국제인형극학교’ 위치 (사진 제공=춘천시)

Q. 2020년에 다시 요청을 받고 돌아왔다. 이번에는 달랐나?

그렇다. 2020년 2월, 시 소유의 ‘청소년 여행의 집’ 건물이 학교부지로 용도변경이 확정되고, 행정안전부로부터 특수상황지역 개발사업 승인을 통해 국비 32억 원, 시비 포함 총 40억의 재원이 마련되며 힘을 받게 됐다. 나는 두 가지 미션을 제안받았다. 2025년 ‘국제인형극연맹(UNIMA) 총회’ 유치와 ‘인형극학교’의 알맹이를 채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2020년 6월에 인형극제 대외협력팀장, 유니마코리아 사무국장이라는, 다소 복잡한 (웃음) 직함을 달고 다시 춘천에 돌아왔다. 

Q.유니마 총회 유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걸로 알고 있다.

돌이켜 보면, 코로나 상황을 역이용한 전략이 주효했던 거 같다. 평상시였다면 국제 행사 유치를 위해 국제투어를 했었을 것이다. 팬데믹 상황도 어려웠고 이동시간과 비용 소요를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개별 유권자들을 만나고 설득할 물리적 시간 또한 제한적이었다. 특히 세계 유니마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캐나다 몬트리올 유치가 당연하게 여겨졌던 상황이었다. 투표 발표 바로 전까지도 우리 내부에서조차 춘천이 안 될 거라는 분위기였다. 물론 나와 함께 일한 세 명의 동료직원만 빼고 말이다. (웃음)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나의 전략은 단순했다. ‘100일간의 일대일 다단계, 게릴라전’. 150여 명의 유권자들 가운데 핵심 유권자(대부분 인형극 아티스트) 정보를 우선 리서치하고, 줌 미팅, 전화, 왓츠앱(WhatsApp) 메신저, SNS 등을 활용해 최소 2~3회 집중적으로 접촉하고, 나머지는 다단계 방식으로 입소문을 내도록 해보자는 전략을 세웠다. 

춘천의 인형극 시설 인프라와 축제역사, 특히 인형극학교설립 등의 미래비전을 어필하면서 춘천과 한국 인형극에 대한 인지도 확산에 집중했다. 특히 30개국 58개 팀을 참여시킨 인형극 국제 영상캠페인, K-방역마스크 지원 등의 전략적 접근도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투표 1주 전 무렵부터는 대륙별, 유니마 분과별, 혹은 개인 유권자들로부터 춘천을 지지하겠다는 신호를 받기도 했다. 투표 전날 온라인 총회에서 15분 분량의 마지막 유세 동영상을 내보냈는데, 이 웰메이드 동영상이 성공의 정점을 찍었다. 그때 댓글 창에 올라온 전 세계 인형극인들의 환호 메세지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다. 비대면으로 실시간 진행된 첫 경험이었는데, 감동이었다. 영혼을 갈아 넣은 결과, 92대 27의 압도적인 표차로 춘천이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유니마(UNIMA)는 1929년 프라하 세계인형극박람회 개최를 계기로 결성된 유네스코 산하 공식 국제인형극 민간기구로서 세계 공연예술 국제기구 중 가장 오래된 단체이다. 프랑스 샤를르빌에 본부가 있고 4년마다 총회와 세계인형극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Q. ‘춘천국제인형극학교’가 중요한 것 같다. 춘천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춘천은 이미 1995년에 마임축제와 인형극제의 성공사례를 통해, 당시 문체부로부터 문화도시로 공식 인정받았다. 또 전국 최초로 인형극 전용 극장과 박물관을 건립하는 등 춘천은 이미 ‘인형극의 도시’라는 정체성을 확보해오고 있었다. 문화예술은 거점이 확보되어야 씨를 뿌리고 꽃이 자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사람이 모인다. 

춘천은 이미 한국 인형극의 거점이지 않은가?! 프랑스 샤를르빌(Charleville)에서는 2년에 한 번 ‘세계인형극축제’가 열린다. 축제 기간 인구 5만의 작은 도시가 인형과 인형극으로 가득 채워진다. 이 축제가 열릴 때마다 도시의 정체성이 반복적으로 각인되면서, 경쟁력이 높아진다. 축제가 한 도시를 먹여 살리는 동력으로 선순환된다. 

인형과 인형극을 매개로 도시와 시민은 반복되는 일상의 루틴에서 잠시 벗어나 정서적, 예술적 충만함을 공유하고 공감하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일 정도다. 그런데 조금 아쉬운 것은 축제는 찰나이고 도시는 축제 없는 더 긴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도시의 문화 정체성은 도시와 시민의 루틴 안에서 지속 가능한 어떤 것이 함께했을 때 완전체로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형극학교’ 설립은 춘천이 ‘인형극의 도시’라는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인형극의 무한 동력을 21세기 미래 산업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경쟁력 높은 문화자산이 될 것이다. 세계인형극은 이미 그 흐름에 있으며, 춘천은 지금 시작하는 것일 뿐이다.

윤정섭 교수의 〈물질적 남자〉 / 김태용 교수의〈이슬람 수학자〉

Q. 신입생 모집 등 개교 준비는 잘 되고 있나?

춘천시 ‘청소년 여행의 집’ 건물 리모델링 공사가 잘 진척되고 있고, 7월 중순 경 완공 예정이다. 전체 시설의 행정상 명칭은 ‘인형극특화창업지원센터’이고, ‘춘천국제인형극학교’는 시설 안의 소프트웨어로서 설계됐다. 

현재 첫 신입생 모집이 시작되어 6월 13일 지원 마감이다. 온라인 입학설명회가 지난 19일과 26일 열렸고, 6월 2일과 9일에도 예정되어 있다. 홈페이지(www.cspuppet)와 SNS(csoppee) 등을 통해 안내받을 수 있고, 해외에서도 문의가 오고 있다. 만 18세 이상의 예술 분야 관련 학력 또는 경력이 있거나, 인형극과 융합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학교는 올해 가을부터 내년 봄까지 1년 동안 두 차례의 시범운영을 거치면서 2년제 정규과정의 커리큘럼과 운영 시스템 전반을 정교하게 다듬어나갈 예정이다. 

‘춘천국제인형극학교’의 모든 학비는 전액 지원하며 숙소도 제공한다. 두 차례 시범 과정의 우수 수료생에게는 2년제 정규학교 진학 시 가산점을 부여하고 해외 인형극학교 및 축제 탐방을 지원하려고 한다. 

Q. 현재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무언가?

사실, 교육프로그램 전체를 설계하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국내에 전혀 사례가 없는 학교를 그려야 하는데 엄청나게 큰 백지 위에 천 개도 넘는 각기 다른 퍼즐 조각을 데드라인을 두고 맞추는 거 같았다. 

‘춘천국제인형극학교’의 이름에 들어간 4개의 단어, 춘천이라는 도시성, 국제라는 확장성, 인형극이라는 예술성, 학교라는 전문성 등 모두 고려의 대상이었고, 삐꺽대며 이제 겨우 한 시즌의 프로그램만 선보인 상태다. 

‘Be a Puppeteer!!’, 인형극학교의 슬로건이자, 교육목표 중의 하나인데. 4개월 집중과정에서 이 슬로건에 함축된 의미들을 학생들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과정 곳곳에 열쇠를 숨겨두었다. 우리는 열쇠를 함께 찾을 최고의 교수진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 같다. 우리의 커리큘럼은 계속 갱신될 것이고, 교수진도 계속 변화할 테니까. 

Q. 고민도 있을 것 같다.

염려도 있고 기대도 있다. ‘학위 없는 인형극학교를 과연 누가 다닌다고 할까?’라는 염려부터 학교 이후의 진로에 대한 고민까지 솔직히 많이 있다.

나뿐만 아니라 학교를 설립하는 춘천시도 위탁 운영을 맡은 재단도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가 최고의 예술가를 배출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고, 우리 학생들이 졸업 후 ‘인형극을 통해 자생하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모두 숙제로 안고 있다. 우리만의 고민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와 시민이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Q.시민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오늘 질문 중 제일 어려운 질문 같다. 춘천시로 주소 이전 한지 겨우 1년 정도 된다. 아직은 춘천시민들과의 연대감도 부족하고, 시민과 공유한 것도 사실 거의 없다. 

어떤 춘천시민에게는 내가 속칭 ‘듣보잡’ 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인형극학교’가 왜 춘천에 세워지고 공공자원을 투여하는지 그 필요성과 가치를 공유하고 공감한 시간도 부족했다. 단지 이 말씀은 드리고 싶다. 이제 갓 개관준비를 마친 인형극학교는 예술인만의 전유물이 아닐 것이며, 문턱은 낮게 소통은 넓게 열어 놓고 시민들에게 다가가고자 노력할 것이다. 5년 후, 10년 후에는 춘천의 문화적 자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린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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