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큰롤 50년 역사를 빛낸 50 거목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1945년 영국 리플리 태생으로 백인 블루스 기타의 전형을 제시한 인물. 

야드버즈(Yardbirds)가 상업적으로 흐른다는 이유로 탈퇴해 좀 더 블루스에 헌신하기 위해 존 메이올 앤 더 블루스 브레이커스(John Mayall & The Blues Breakers)에 몸담았고, 이후 즉흥 연주 잼의 미학을 확립한 그룹 크림(Cream)을 시작으로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 데릭 앤 더 도미노스(Derek & The Dominoes)를 두루 거쳤다. 흑인 연주자를 능가하는 수준 높은 블루스는 그만의 것이다. ‘기타의 신’이 그의 별명이다.

크림 때 히트곡인 <Sunshine Of Your Love>와 데릭 앤 도미너스 시절의 <Layla>는 ’70년대 록의 금자탑으로 회자된다. 비틀스 조지 해리슨의 아내인 패티 보이드에게 실연당하고 만든 처절한 비가(悲歌)인 <Layla>는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블루스의 고통을 닮은 그의 실제 삶은 죽은 어린 아들에게 바치는 ’92년의 <Tears In Heaven>로 다시 반복되었다. 이 곡은 언플러그드 음악의 기폭제가 됐다.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1944년 영국 런던 태생인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Jimmy Page)가 흔들리던 야드버즈를 살려 확대 재생산한 그룹.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 보컬), 존 폴 존스(John Paul Jones, 베이스, 키보드), 존 본햄(John Bonham, 드럼)과 함께 4인조로 1968년 결성했다. 라이벌 딥 퍼플과 더불어 헤비메탈 형식미를 확립했고, ’70년대 헤비메탈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 이유때문에 헤비메탈 밴드로 인식되어 있지만 실은 블루스, 포크, 인도음악, 레게 등 가리지 않고 많은 장르의 음악을 소화했다. 

하이 톤에 그림 그리는 듯한 로버트 플랜트의 보컬을 위시해 각 멤버들의 역량이 워낙 출중해 그들의 연주는 지망생들에게 록의 교과서로 통했다. 대표곡은 <Whole Lotta Love>와 <Stairway To Heaven>. ’74년에는 독자적 레이블인 스완 송을 설립. ’75년 전미 순회공연은 흥행의 신기원을 이룩했고, 당시 미국 포드 대통령의 두 딸은 TV에 출연해 레드 제플린을 가장 좋아하는 그룹이라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1980년 존 본햄이 과음으로 사망하자 “그가 없는 레드 제플린은 의미가 없다”며 지체 없이 해체를 선언, 그 의리로도 마니아들의 호감을 샀다.DJ 최인(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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