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현서(소설가)

어머니는 어린 시절 상사병으로 죽는 친구를 보았다고 한다. 

작은 시골 동네에서 보이는 사내가 별로 없었던 것이겠지. 열여덟의 여인은 사촌 오빠를 사랑하게 되었다. 뭘 어찌해 볼 수도 없이 상대를 향한 마음은 점점 깊어져만 가고, 여인은 타들어 가는 가슴을 결국 주체하지 못하고 몸져누워 버렸다.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한 채 입술부터 손끝, 발끝이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고, 그렇게 며칠이 지나니 친구였던 엄마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여인의 상태가 거기에 이르자, 여인의 가족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 모두가 발을 동동 구르게 되었다. 마을 사람 하나가 수소문 끝에 처방전을 가지고 왔다. 상사의 대상이 여인을 따뜻하게 안아주면 낳을 수 있다고. 

1950년대면 병 고치겠다고 똥, 오줌도 먹던 시절 아닌가. 참 쉬운 처방이다. 여인의 가족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이제 여인이 살릴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지만, 사촌 오빠의 아버지는 집 안의 종손을 그런 일에 쓸 수(?) 없다며 이를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여인은 며칠을 더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고, 두 집 안은 원수가 되었고, 마을에서 가장 큰 부농이었던 사촌 오빠의 집 안은 몇 년 계속해서 흉년이 들어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졌다고 한다. 

처방대로 했더라면 여인이 죽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처방을 알고 있었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감탄스러웠고, 한 여인의 목숨보다 종가의 체면이 중요했던 큰아버지의 신념(?)이 소름 끼쳐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이야기이다. 

 

“근데, 아주…….”

어머니는 그 친구의 성질이 보통이 아니었고, 원하는 건 꼭 가져야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나와 다른 해석을 덧붙인다.

그렇지. 그냥 바라만 볼 것이지. 죽을 것까지야. 사람들은 사랑도 저마다 제 방식대로 한다. 문득, 그 여인이 1930년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지 않고, 요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사촌 오빠에게 꽂혀 열여덟의 꽃다운 나이에 그렇게 허망하게 갈 것이 아니라, 다른 것에 꽂혀 삶을 멋지게 살아내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든다. 

어머니 기일에 즈음하여 산소에 오르다가, 어머니가 들려주신 많은 이야기 중에 이 이야기가 생각나는 건, 어머니의 품이 그리워서 그런 것이겠지. 이젠 어머니가 생전에 좋은 것만 먹으라고 나눠주셨던 천일염도 태양초 고춧가루도 다 사라지고, 어머니가 쓰시던 대바늘 한 쌍과 어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만 가슴 속에 남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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