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시인)

아침에 들비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는데 현관 문고리에 우유와 유산균 음료가 매달려 있습니다. 순간, 최근에 “요구르트 아줌마”가 된 지인이 생각났습니다. 중국에서 사업하다가 코로나 여파로 견디지 못하고 돌아와서 남편은 공사현장에 잡부로 나가고 부인은 우유라도 배달하자고 나선 것입니다. 요즘 중국에서 철수한 분들 가운데 이런 처지가 된 분들이 많다고 해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인수인계를 보통 3주 이상 받는다고 하는데 전임자가 단 3일 동행한 후 손을 놓는 바람에 천애 고아 같은 신세가 되었다고 합니다. 배달처 숙지가 아예 안 된 것은 물론이고 배달 카트조차 손에 익지 않은 상황. 하필이면 처음 보급소장이 된 30대 직원이 함께 나섰지만 둘 다 초보이다 보니 시각장애인 둘이 길을 나선 것과 마찬가지였겠지요.

둘이서 새벽 5시 30분에 일을 시작해서 저녁 5시까지 배달을 해도 겨우 마칠까 말까 했답니다. 여기저기서 항의 전화도 쇄도했다지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보급소장과 눈이 마주쳤는데,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사람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고 하는군요. 막막하고 외로운 순간에 서로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그 말을 듣는 제 눈시울도 시큰했습니다.

저도 이 집으로 이사 와서 20여 년 가까이 우유와 유산균 음료를 받아서 먹고 있습니다. 그동안 배달하시는 분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배달하시는 분은 늘 문밖에 계시고 저는 늘 문 안에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 사이에 사람이 바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우유와 유산균 음료는 바뀌지 않고 그대로입니다.

다만 그동안 몇 번, 아침에 배달이 되어있지 않아서 짜증을 낸 적이 있습니다. 이 아주머니 너무 불성실한 거 아녀? 출근 시간 전엔 배달을 해야 마땅한 거 아녀? 확 끊어버릴까? 뭐 이랬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 지인이 그런 일을 한다고 하니까 생각이 막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배달 아주머니도 사람인데 어찌 사정이 생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기계처럼 날마다 정확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그것 좀 늦게 먹는다고 생계에 지장이 생기거나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누구나 생각지도 못했던 처지에 몰릴 수 있습니다. 세상을 갑과 을로 나눠서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반지성의 부끄러운 작태입니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자들이 비굴과 비겁의 역사를 저질렀습니다. 지옥의 변두리 같고 소돔성의 한복판 같은 세상은 배려와 감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만들었습니다. 

오늘 아침 요구르트 배달해 주신 분들께, 식당에서 반찬 옮겨다 주시는 분들께, 항의 전화 문의 전화 받아주시는 분들께, 직업병 앓아가며 일하시는 분들께, 길에서 광고전단 나눠주시는 분들께… 배려와 감사의 마음을 가져봅시다. 한 다리 건너면 다 가족이고 측근이고 지인들입니다. 하루 종일 혼자서 모내기하는 영감님을 보고도 모르는 채 퍼질러 앉아서 시인 놀음이나 하는 김주대 시인처럼 살면 안 됩니다.


내가 드디어 미친 건가.

밤새 전 국회의원 겸 현 국힘당 강원도지사 후보 김진태 씨랑 놀았다. 어처구니없게도 김진태 씨가 교수님이었는데 내가 그의 애제자였다. 꿈에서도 김진태 교수는 아무도 놀아주지 않는 이상한 사람이어서 내가 그를 위로하며 학교 앞 술집에서 술을 마셔주었다. 온갖 징징거리는 말을 다 들어주었다. 이거 뭐지?

나는 춘천을 사랑한다. 애인과 공치천을 걸으며 촌스럽게 사랑을 맹세했다. 가난한 친구의 후평동 자취방에서 추위에 떨며 술을 마셨다. 소설가 이외수 선생과 장미촌 폐허를 거닐었다. 춘천 102보충대를 통해 군대에 갔고, 제대하는 날에도 춘천 소양강가에서 술을 마셨다. 서러울 때마다 춘천이 생각난다.

김진태 씨가 춘천 출신 국회의원이었을 때 그는 정치를 더럽게 만들었다. 악담과 저질 활극과 왜곡이 난무했다. 80년 5월 광주를 능욕했고 세월호를 수장시켰다. 저런 사람이 검사 출신이라니, 얼마나 억울한 사람을 많이 만들었을까 손이 떨렸다. 춘천의 망신, 강원도의 흠이라고 사람들이 말했다. 언제나 퇴출 대상자 명단에 올랐다. 

시인 최돈선 선생님 제자 민주당 허영 후보에게 국회의원 뺏겼을 때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춘천에 희망이 있구나! 춘천은 역시 예술과 낭만과 양심이 살아있는 동네구나!

그런 그가 지금 국힘당 강원도지사 후보로 등장했다. 국민들의 정치 냉소에 힘입어 어부지리 당선 가능성까지 열려있다. 서울, 경기, 부산, 인천... 역사의 퇴행이 눈앞에서 감지된다. 소름이 돋는다. 지금 잃으면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것들을 그냥 건네주게 생겼다. 끔찍하다.


꿈에서도 김진태 씨는 지가 교수인 줄 알고 돈도 안 내고 토끼더라. 시바

누군가는 당신이 죽어서 별이 되었다 말하지만, 그래도 저는 당신이 살아서 울타리 낮은 이웃이 되기를 바랬습니다. 바보 노무현!

<해마다 쓰는 편지>


대통령님! 오늘 바이든 독대할 때 손바닥에 꼭 “왕”짜 쓰고 드가셔야 합니데이~ 미쿡 대통령만 이기면 세계의 왕이 될 수 있어요! 믿슈미데이~!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