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일 기자

“머리~ 젖습니다. 신발~ 젖습니다. 옷 머리 신발 양말 다~ 젖는 겁니다. 물이 나를 부르고, 내가 물을 부르네. 젖고 젖는 여기는 아마존~. 입술 없어져요. 눈썹 지워지고요. 마스카라 번집니다. 앞머리~ 풀려요. 다 다 젖는 안 젖을 수 없는 여기는 아마존조로존존존. 아마존.”

최근 유튜브에서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에버랜드 놀이기구 ‘아마존 익스프레스’ 캐스트(계약직 직원) 김한나(23) 씨가 놀이기구 이용법을 안내하는 랩이다. 

대중은 생기발랄한 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영혼 없는 눈빛과 설렁설렁한 몸짓을 보며 “동태눈같이 눈에 힘은 없는데 리듬감, 박자, 딕션이 완벽하다”라며, 그를 ‘소울리스좌’(영혼 없이 일하는 사람 중 최고)라 부른다. 김씨는 BBC코리아 인터뷰에서 “영혼이 없다는 게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닌 것 같다. 설렁설렁 보다는 최적의 효율을 찾아서 일한다는 뜻이라 생각한다. 처음 일을 배울 때 쉽지 않았다. 저도 그렇고 다른 분들도 아마 영혼이 없기 전까지 매우 큰 노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업무기능을 온전히 익힌 후 반복되는 고단한 노동을 지속하기 위해 자신의 적정 페이스를 유지할 만큼의 에너지를 소모하며 일한다는 것이다.

대중 특히 MZ세대 직장인들은 그에게서 현대 직장인의 애환을 떠올리며 감정이입했다. 그의 영상은 지난 27일 기준 1천400만 뷰를 돌파했다. 청년세대뿐만 아니라 중장년층들도 응원 댓글을 많이 달고 있다. “소울리스 상태를 우리는 고수, 달인, 전문가, 숙련자라고 부른다. 열정이 없는 게 아니라, 열정을 불태워 이미 경지에 닿았음이다.”, “인생 사는 동안, 돈은 많이 벌 수 있어도 주목받는 순간은 별로 오지 않습니다. 대단한 순간입니다, 소울리스좌. 우리도, 인생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 최고의 순간을 다시 기대해 봅시다.” 

그 덕분에 부정적 의미의 ‘소울리스(soulless)’가 노동에 소요되는 에너지를 최적화한 상태라는 새로운 맥락을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국민 대다수가 노동소득만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상황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착취적으로 노동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한국사회에 대한 반작용이기에 마냥 유쾌하지 않다. 계약 기간이 끝난 그는 화제성에 힘입어 홍보부서로 옮겼고 최근에는 에버랜드 광고 모델까지 됐다. 일과 자아 사이에 적정한 거리를 두며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 직종, 또 그런 업무태도가 인정받는 직장이 얼마나 될까? 

2020년 기준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천908시간이다. OECD 회원국 평균은 1천687시간으로 평균보다 연 221시간 더 일하는 셈이다. OECD 회원국 순위로는 한국이 네 번째로 길게 일한다. 콜롬비아, 멕시코, 코스타리카 다음으로 노동시간이 길다. 지난해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 7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직장인 3명 중 2명(64%)이 번아웃 증후군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최근 정부와 여당, 재계는 ‘노동 개혁’을 강조하며, 업종별 특성과 현장 상황에 맞게 노사 합의를 통해 노동시간 선택권을 확대하여 노동시간 유연화에 나설 분위기다. 하지만 노동계를 중심으로 비판적인 목소리가 크다. 

‘직장갑질119’는 “한국 직장 곳곳에서 여전히 합의 없이 주 60시간, 70시간 불법노동이 판치고 있다. 노조가 없는 85.8%의 직장인은 이에 대응할 수도 없다. 노동시간 유연성이 실현되면 일터의 공정은 사라지고 노동자들의 건강은 무너지고 일과 가정의 양립은 파괴된다”라며 우려하고 있다. 2018년 주 52시간이 도입되기 전 유명 게임업체 직원들이 과도한 업무로 돌연사한 일이 있었다. 이제 겨우 5년이 지나 일과 가정이 양립되는 문화가 조금씩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김한나 씨처럼 ‘소울리스’하게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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