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시인)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 같습니다. 조별 예선 탈락이 확정됐는데도 마지막 독일전 이기고 나니까 마치 월드컵 우승한 것 같았지요.

경기도지사 역전승, 참 다행입니다. 새벽의 통쾌한 드라마였습니다. 인구 1,400만 경기도가 그나마 윤석열의 음주독주를 막았습니다. 김은혜라는 불세출의 건물주를 막았습니다. 국힘당의 오만방자한 일방통행을 막았습니다. 그런데 전국이 시뻘겋군요. 폭염경보 일기예보 같습니다.

민주당을 아주 죽이지 않은 민심에 보답해야 합니다. 최소 10% 지지율 깎아 먹은 자(들) 규명해서 축출하는 게 가장 빠른 보답입니다. 지금 근소한 차이로 패배한 지역은 다 민주당의 자해행위가 부른 참사입니다. 

당선하신 분들 축하드립니다. 낙선하신 분들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전국의 도둑놈, 사기꾼들이 총출동했다는 평가를 받는 지방선거이니만큼 조금만 덜 해먹고 덜 썩어지길 당부드립니다. 그리고, 당분간 선거도 없고 그들이 원하는 세상이 왔으니 이제 돌대가리들 소음도 좀 잦아들까요? 기레기들은 태평성대를 노래하고 노인들은 더 늙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약자들은 더 어려워지고 20대 육체에 6,70대 머리를 장착한 청년들은 욕설이 더 늘겠지만, 역사는 흐르고 세상은 변해 갈 겁니다.

저는 14만 4천명 애인들 가운데 이번에 투표하지 않은 애인들 색출해서 대대적 물갈이를 단행토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밥 잘 드시고 힘내시길요. 외식하실 땐 대통령 스타일로 꼭 50% 할인해 주는 집만 가시길요.

아, 마지막으로 턱별히! 끝까지 0.95% 득표로 민주당 승리를 위해 헌신해주신 강용석 후보님께 축복이 있길 기원합니다.


경북 울진에 대형 산불이 나서 주민들이 대피 중인데 각하 부부께서는 주말 망중한을 즐기고 계십니다. 언론에서는 “퍼스트독과 함께 용산청사 나들이” 운운하며 여사님께서 신은 신발이 “디오르 143만원” 짜리라고 광고합니다. 태평성대의 풍경입니다.

대선 앞둔 3월 5일에 윤석열 후보는 당시에도 산불이 났던 울진 이재민 보호소에 찾아가서 “청와대에 있더라도 헬기 타고 와야 한다”며 주민들을 위로했습니다. 그랬던 분께서 이제 대통령 되고 나자 류근처럼 뉴스를 끊은 건가요?

뭐 어차피 대통령이 불 끌 것도 아닌데 주말 잘 보내세요. 아침에 또 임금님 행차처럼 출근도 하셔야지요. 지난 대선에서 울진군 주민들은 윤석열 후보에게 겨우 76.24% 투표했습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84%에 비하면 형편없는 득표율이니 얼마나 괘씸한가요. 

문재인 대통령이 저러고 있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참… 나라꼴 의연하게 굴러갑니다. 아이고~ 시바!


조선의 19대 왕 숙종은 정치적 업적보다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남자라는 드라마적 소재로 더 유명합니다. 그러나 그는 아주 노련한 왕이었습니다. 14살에 즉위했는데도 당대 최고의 실력자였던 송시열의 군기를 잡았던 앙팡 테리블이었습니다. 

숙종이 즉위했을 때(1674) 집권당은 남인이었습니다. 붕당정치가 기승을 부리던 시대였습니다. 숙종은 남인의 힘이 너무 강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남인 허견의 역모 사건을 엮어서 일거에 남인 세력을 축출하고 서인을 등용합니다. 그 유명한 경신환국(1680)입니다. 서인의 힘이 강해지자 이번엔 장희빈 아들의 원자 책봉 문제를 빌미로 서인을 쫓아내고 다시 남인을 등용합니다(기사환국, 1689). 

두 여인 사이를 극단적으로 오간 숙종답게 그의 변덕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번엔 인현왕후의 복위 운동을 빌미로 다시 서인을 등용하는 갑술환국(1694)을 일으킵니다. 장희빈의 몰락과 함께 남인은 거의 궤멸적 상태에 처하게 됩니다.

숙종은 세 차례에 걸친 환국을 이용해서 강력한 왕권을 수립했습니다. 숱한 죽음과 희생을 초래했지만 붕당정치 신권 우위의 시대에 특별한 위상을 확보합니다. 조선을 통틀어서 가장 강력한 임금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왕심이 곧 천심이었던 셈입니다.

민주당은 제대로 심판을 받은 것 같습니다. 탄핵 이후 한 번도 반성이나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국힘당은 대선과 지선을 연달아 이겼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선 민심이 곧 표심이고, 표심이 곧 천심일 텐데, 제가 보기에 경찰이 도둑 못 잡는다고 시민이 도둑 편을 든 결과로 보여지지만 뭐 어쩔 수 없습니다. 

다수 의석을 가지고도 좌고우면하며 개혁에 무능했던 민주당은 혼이 나는 게 맞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국힘당이 이겨야 했는가에 대해선 좀 의문인 게 사실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국힘당이라니요.

민심에 의해서 권력구도가 바뀌는 것은 민주주의의 묘미입니다. 노태우 이후 10년씩 번갈아 여야가 바뀌던 흐름이 문재인 전 대통령대에 이르러 5년으로 단축되었습니다. 숙종 시대의 환국이 국민에 의해 재현되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국민이 정권을 바꿈으로 해서 정치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국민의 힘(국힘당 말고)이 강해지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다만 작금의 선택이 수구 기득권 부패 세력들에게 국민을 더 얕잡아보고 더 무시하는 계기가 될 것이 걱정이긴 합니다. 국민을 점점 더 바보로 ‘교육’시키고 있는 수구 쓰레기 언론의 탄탄대로가 걱정이긴 합니다. 

사과 좋아하는 민주당은 당장 내일부터 사과의 주체를 놓고 또 쌈박질을 벌이겠지요. 비대위 책임이냐 총괄선대본부장 책임이냐를 놓고 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일 것입니다. 바람직합니다. 바닥까지 다 드러나야 새 물을 붓든 새 술을 붓든 할 것 아닙니까? 

저는 민주당 지지자가 아니라 불의한 자들 반대편이니 그 싸움을 잘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갑술환국 이후 궤멸적 처지에 몰리는 남인처럼 되느냐 광장의 촛불처럼 부활하느냐 지켜보겠습니다. 갑술환국 이후 실질적 노론의 나라가 된 조선은 결국 그 독재의 모순에 빠져 익사 당했습니다. 나라도 백성도 망했습니다. 지금 예견되는 검찰-언론-자본 독재국가, 불길합니다.

국힘당의 승리가 아니라 민주당의 패배라는 사실, 민심의 승리가 아니라 기레기들의 승리라는 사실이 참 무섭고 안타깝습니다. 모두들 안녕히 주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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