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물리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짐 알칼릴리 지음 / 윌북 펴냄 
어떻게 물리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짐 알칼릴리 지음 / 윌북 펴냄

시간에 신세를 지지 않고 살았던 적이 있다. 요일을 알 이유가 없었고, 날짜도 의미를 잃었던 시절. 과거가 인간의 직관 안에 인지되었을 때 비로소 시간에 화살표가 부여된다는 명제가 맞다면, 그 시절 변방에 사는 나에게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던 게 맞다. 전기가 들지 않는 산골의 밤은 완벽히 검었는데, 유난히 많은 별들이 제 존재를 밝히고 뽐냈다. 우주는 어떻게, 왜, 어디서, 무엇 때문에 존재할까? 운명은 봉인된 것일까? 아니면 우연의 지배를 갖는 것일까? 미래는 정해져 있을까? 아니면 이미 결정된 것인가?

변방에 산다는 이유로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연애의 시간이 다툼의 시간보다 빠르게 지나가는 것은 느낌적인 느낌(?)일 뿐이다. 그런 건 없다. 다만 변방이 블랙홀 근처 어디에 있다면 시간은 느리게 갈 것이다. 데카르트는 《성찰》에서 물질세계에 관한 절대적 진리를 알려면 먼저 모든 것을 의심해 보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각이 말하는 것을 무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각자에게 흐르는 시간의 속도가 서로의 상대적 운동상태에 따라 달라진다는 ‘동시성의 상대성’은 절대적이라 믿었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의 직관을 송두리째 빼앗아 버렸고, 오직 불변하는 것은 광속이라는 특수상대성 이론의 등장을 알렸다. 

한 계는 항상! 질서가 있는 ‘특별한 상태’에서 뒤섞인 ‘덜 특별한 상태’로 느슨해진다. (‘무질서도가 증가한다’라고 표현한다.) 열역학 제2 법칙이라 불리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시간에 방향성을 부여한다. 우주와 그 안에 든 모든 것은 태엽이 풀리듯 열적 평형 상태를 향해 움직이려는 성향이 있는데, 그 이유는 분자 수준 사건의 통계적 확률 때문이며, 그 확률은 가능성이 낮은 쪽에서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나아간다. 이 흐름을 우리는 ‘시간’이라 부르며 ‘비가역적’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다. 

뉴턴역학에서 아인슈타인을 건너 양자역학, 열역학,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초끈이론, 모든 것의 이론, 양자컴퓨터의 미래, 다중우주…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용어를 안다는 것이며, 그것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절대적인 것을 동경하면서 일시적인 것에 얽매인 존재다. 언제라도 무지에서 오는 경외감보다는 이해에서 오는 경외감을 택하겠다는 이 책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지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집중하세요. 인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관념을 만들고 거기에 집착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늘 불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아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그 자아는 늘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할 뿐 유일한 실재인 현재는 그냥 흘려보내기 때문입니다.’ - 김영하 [작별인사] 160쪽 

류재량(광장서적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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