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욱(작가, 춘천문인협회 회원)

고등학교 시절의 문학 활동을 소재로 한, 원고 청탁이 내게 온 건 지난 2월 중순이다. 200자 원고지로 50매 이상이란다. 그런 원고를 해결하려면 자료 준비가 관건이다. 자료가 부족하면 직접 사람을 만나서 인터뷰하는 방법이 있는데 만날 약속을 잡는 것도 그렇고 나중에 원고 정리도 그렇고 간단치 않은 일이다. 

어쨌든 나는 청탁 받은 원고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자료들부터 모았다. 그럴 때 1970년 1월에 발행된 춘고 교지 《소양강》 19호에서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2학년 ‘최현순’ 학생이다. ‘열일곱 해 이 순간들은’ 이란 제목의 수필에서 그는 가을바람처럼 스산한 내적갈등을 토로하고 있었다. 일기 형식을 빌려 써나갔는데 10월 25일자 일기의 경우, ‘수학여행에 가지 않고 홀로 청평사를 찾아간 소회’를 밝혔다. 

최현순 학생의 그런 만만치 않은 심적 갈등이 훗날 시인이 된 계기는 아니었을까?

나는 최현순 시인한테 ‘수학여행 대신 청평사에 찾아간’ 얘기를 직접 듣고 싶었다. 전화를 걸었다. 그 결과 고등학교 졸업하던 1971년 2월부터 석 달간 청평사에서 스님의 길을 밟았었다는, 재미난 얘기를 들었다. 머리 삭발은 물론이고 장삼까지 걸치고서 시내에 있는 사진관을 찾아 스님 신분증 사진 촬영까지 했단다. 그런데 막상 입산수도가 석 달이 되자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과 평생 연을 끊고 살 결심이 흔들리면서 결국 상좌스님께 고민을 말씀드리고는 속세로 내려왔다….

내가 최 시인의 사춘기 적 행로에 관심을 갖는 건 이런 까닭이다. 

그는 시를 쓰면서 한 직장의 장(한국농어촌공사 강원본부장)으로 정년퇴임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적 감정을 배제해야 하는 공(公)기관 근무도 만만치 않은 일인데 그 기관의 장까지 해내면서 감정과 사상의 결합체인 시(詩)를 끊임없이 썼다니…. 

시인인 그는 산문도 잘 쓴다. 중고등학교 국어교사를 30년 한 내가 봐도 그의 산문은 문맥도 잘 통하고,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도 뚜렷하다. 글이 끝날 때까지 갈팡질팡하는 일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렇다. 그는 직장에서 장으로 있을 때 글을 써야 할 일이 생기면 밑의 직원한테 시키지 않고 반드시 직접 쓴 사람이다. 간단한 축사라도 자신이 직접 썼다. 글을 써야 할 때 평교사를 시키지 않고 자신이 직접 쓰는 학교장을, 나는 ‘괜찮은 교장!’이라 여겼다. 교직에 있었을 때 일이다. 

입산과 하산, 시와 산문, 양 갈래 길을 마다하지 않는 최현순 시인. 그의 변함없는 건필(健筆)을 기원한다.

이병욱(작가, 춘천문인협회 회원)


최현순 시인  

2002년 계간 《창조문학》을 통해 등단. 한국농어촌공사 강원본부장·상임이사, 춘천문인협회장을 역임했으며, 《두미리 가는 길》, 《아버지의 만보기》 등의 시집을 냈다.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