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홍석 (사단법인 인투컬쳐 상임대표)

그리스 산토리니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관광명소다. 가파른 절벽 위에 하얀 회반죽으로 덮인 건물과 에게해의 푸른 바다와 붉은 석양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경관은 여행자의 감성을 매료시킨다. 산토리니 건축물은 지형과 기후환경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생겨난 결과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산토리니 사람들은 화산재로 구성된 지층을 파고들어 가 그 위에 집을 지었다. 

이곳은 비가 적고 건조한 기후 탓에 집을 지을 수 있는 충분한 목재를 구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화산재는 다른 자원이 거의 필요가 없었다. 화산암을 빻아 시멘트와 혼합하면 기존 콘크리트보다 더 견고하고 자외선을 반사시켜 주는 친환경적인 건축자재가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건축물은 아름다운 에게해 바다를 배경으로 눈부시게 새하얗고 파란 산토리니만의 독특한 건축양식을 만들어냈다. 

섬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오밀조밀하게 들어선 작은 상점과 호텔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세련미와 함께 여행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가파른 절벽지형을 따라 형성된 집 옥상은 이웃집 누군가의 테라스로 활용된다. 산토리니 건축경관디자인의 핵심은 전통과 주변 환경과의 조화다. 건물을 새로 지을 때는 건축물 심의과정에서 색채뿐만 아니라 창문의 크기까지 확인한다. 심지어 골목길의 바닥재까지 건축물과 어울릴 수 있도록 세심하게 선택함으로써 미적 감각을 불어넣는다. 

특히 바다 경관권을 침해할 수 있는 그 어떤 건물도 이층 높이를 넘어 지을 수 없게 한다. 뒤편 건물의 경관권을 침해받지 않도록 하려는 배려 때문이다. 그 결과, 절제된 건축미와 통일성을 유지하며 산토리니의 고유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산토리니의 매력은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시 당국은 1980년부터 40년이 넘게 일관된 도시디자인 정책을 추진하여, 산토리니를 세계 각지에서 매일 1만 명의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곳까지 도시미관에 세심하게 신경을 쓴 덕분이다. 우리가 산토리니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사점은 정책의 일관성이다. 

6월 1일 지방선거 후 자치단체장이 교체되면서 올 초 발표한 캠프페이지 개발을 두고 정파 간 갈등으로 또 혼선을 빚고 있는 모양새다. 도정과 시정책임자가 새로 당선될 때마다 정책 방향이 바뀌는 것은 비단 춘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리더가 바뀔 때마다 공공정책이 위기를 겪는다는 것에 있다. 

정책의 방향성에 관한 옳고 그름을 떠나, 이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근본적 원인은 주민 의사와 무관하게 관 주도의 도시디자인 정책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주민과 함께 논의해서 완성된 정책은 오랫동안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다. 주민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도시는 아름답다. 도시의 생명력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때 가치를 인정받으며 그 공간이 아름다운 장소로 탄생하게 된다. 

사회도시학자 테오드르 폴 김은 도시가 아름다워지려면 도시발전의 가치판단 기준이 실질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가치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주민들의 삶을 고려하지 않은 정치인의 욕망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시선만 현혹할 뿐이라고 한다. 인구 14,000명이 사는 작은 화산섬 산토리니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섬에 대한 주민들 스스로의 자부심과 개발 욕망에 대한 절제이다. 그리고 공공정책에 대한 지역민들의 참여와 신뢰의 결과이다. 결국 정책은 방향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수십 년을 내다보는 일관성이다. 

오홍석 (사단법인 인투컬쳐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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