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시인)

어제 아침엔 멀리 가려고 배낭을 꾸렸다. “꾸렸다”는 어감이 참 나쁜데 꿈도 꾸고 대통령도 민주당도 꾸리꾸리하고 신혼살림도 꾸리는 걸 보면 딱히 막 나쁘게 생각할 일도 아니지. 어제 아침엔 막상 잘 꾸린 배낭을 잃어버렸다. 49일 만에 술을 마시니까 벌어진 일이다.

옛날 옛날 애인은 요즘 잘나가는 카수인데 나는 왜 배낭을 잃고서 그를 맨 먼저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나 말여요~ 배낭을 잃어버렸어요.라고 말하자마자 그는,

달나라엔 배낭이 필요 없으니까,

이랬다. 나는 공중전화기를 붙들고서 아빠ㅡ 저는 아들을 낳았어요.라고 환호하는 중딩 소녀처럼 외쳤다. 아, 맞아요. 나는 달나라에 가려던 건 아녔어요. 나는 아무래도 달나라보단 명왕성이 어울려요. 그래서 배낭이 필요한 건데 그걸 잃어버렸으니 이제 어쩌나요?

옛날 옛날 애인은 잘나가는 카수였다. 단 한 마디 대답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묻죠?

“묻는다”는 말은 어감이 나쁘다. 윤동주는 별을 무덤에 묻고 내가 몹시 그리워하던 우리 동네 지희 누나는 교회당 첨탑 위에 묻고 하인리히 하이네는 우리들 가슴 안에 묻었으니 뭐 그리 나쁘게 생각할 일은 아니지. 그래서 나는 다 모든 슬픔을 꾹 참고 이 아침에 당나라 시인 맹호연의 일대기를 읽는 거시다. 그는,

친구들과 술 마시며 놀다가 과거科擧를 놓치고... 죽었다. 과거를 놓치면 죽어도 되지, 뭐. 하지만 시인은 과거를 먹고 사는 순간 죽은 거시다. 이렇게 쉽고도 명쾌한 문장을 마구 구사한 나는 이제 또 취하면 되고. 시바,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술이 떡이 돼서 들어온 밤, 다음 날이었다. 나는 술이 왜 떡이 되는 거지? 라고 물었다. 우리 어머니는 경상도 순 문경식 발음으로 말씀하셨다. 술이 덕이 되지 않고 떡이 되니 니를 어찌하면 좋은가.

나는 순간, 우리 어머니는 떡을 비하하는 분이로군! 이라고 생각했다. 

이 시간에 깨어서 전화하면 꼭 받아주는 애인이 있었다. 인생은 자꾸 이별만 기억하게 되네. 그는 어젯밤에 나를 버리고 별과 별 사이로 가버렸다. 나는 뚜렷이 외롭다. 그리고 이 문장은 조금 어려워서 괴롭다. 어려워서 괴롭다니. 아아, 시바!


토요일 아침에 페북에 들어오는 건 좀 삼가야 한다. 빈정 상하고 배알이 꼬여서 못 봐준다. 불금에 뭔놈의 파티는 그렇게나 많고 여행지 맛집과 굿뷰는 그렇게나 많고 가족들은 다 행복하고 아침은 다 호텔에서 먹는 건가. 

부부들과 연인들은 사랑에 겨워서 미친 것 같고 아이들은 왜 하나같이 우수한 성적으로 뭔가에 합격하거나 상을 받는 건가. 개와 고양이마저 럭셔리한 폼을 자랑하는 건가. 토요일 아침에 꼭 그런 걸 올려서 상대적 박탈감과 불행감을 조장해야 하는 건가. 부르르 떨게 해야 하는 건가.

그런데 내가 이러고 말면 민족의 지도자끕 전직 시인이 아니다. 페북질 10여 년쯤 하다 보니까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불금과 토요일 아침에 페북에 뭔가 자랑질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롭고 고달픈 사람들이다. 맨날 맨날 처절하고 치졸한 삶에 시달리다가 어쩌다 주말에 해방된 사람들이다.

맨날 그런 걸 먹고 맨날 그런 델 가고 맨날 그런 경사가 있고 맨날 사랑이 넘쳐나면 그런 걸 굳이 올릴 필요가 있겠나. 굳이 자랑질할 필요가 있겠나. 대통령질 처음해 본 윤석열 님 부부도 그게 처음이다 보니까 막 사진 찍어서 자랑도 하고 왕처럼 행차도 하고 맘대로 나라를 막 뒤흔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쩌다 하니까 촌스럽게 뽐내고 싶은 거시다.

그러니까 토요일 아침에 괜히 페북 들어왔다가 좌절하고 우울에 빠지는 그대여, 그대만 빼놓고 세상이 다 행복하고 풍요로운 것 같아서 슬픔에 빠지는 그대여, 실망하지 마시라. 그들이 보여주는 게 절대로 전부가 아니다. 그렇게 놀고먹고 돌아와서 또 뼈가 빠지도록 카드빚 갚느라 처절하고 치졸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한다. 제 돈 안 내고 개폼잡는 자들은 윤석열 부부 밖에 없다.

어제 나 빼놓고 대게찜 먹은 내 후배 전계숙 일당들 때문에 열 받아서 이런 글 올리는 거 절대 아니다. 시바,


당신이 저와 생각이 다른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틀린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저와 생각이 다르거나 틀린 사람과 토론하고 소통하는 것을 즐깁니다. 그래야 배울 게 있고 재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에게 생각이 없다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생각이 없는 사람이 본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우려할 만한 일이지만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개인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생각이 없는 사람이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생각이 다른 것은 그것으로 하나의 대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생각이 틀린 것은 교정하고 수정하면 됩니다. 그런데 생각이 없는 것은 다릅니다.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동시대의 사회적 문제와 모순에 대해서 성찰하지 않고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서 그 대안을 고민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민주주의 시민이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사회적 이슈마다 댓글을 달고 때마다 투표를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생각 없이 아무데나 도장 찍으면 패가망신하게 되는 경우와 마찬가지입니다. 댓글과 투표는 사회적 행위이기 때문에 그만큼 사회적 영향을 끼칩니다. 그 책임을 공동체 전원이 감수하게 됩니다.

지금 고민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권력을 선택한 결과를 우리 사회가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다른 생각, 틀린 생각을 한 결과도 아닙니다. 대부분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 결과입니다.        

35년 전 오늘,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직사 최루탄에 맞아 혼수상태가 된 이한열 열사 사건에 분노한 시민들의 구호는 “호헌철폐 독재타도”였습니다. 내 손으로 대통령 뽑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당연해진 대통령직선제가 그때는 죽음과 바꿔야 할 만큼 간절한 가치였다는 뜻입니다.

피로 바꾼 민주주의를 지금 아무 생각 없는 자들이 짓밟고 있습니다. 죽음과 바꾼 민주주의의 성전을 권력욕과 일가의 탐욕 밖에 아무런 철학도 비전도 없는 자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위기이고 국민의 불행입니다. 

0.5% 기득권층과 기레기들 외에 지금 태평성대를 부르짖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생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생각이 없으니 본인과 공동체의 위기와 불행을 감지할 능력조차 없습니다. 부디 생각을 합시다. 다른 생각까진 바라지도 않습니다. 틀린 생각이라도 좀 하셔야 방법이 생깁니다. 이런 미치광이 나라 만들자고 그날 우리가 명동성당으로 달려간 거 아닙니다. 아아,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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