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하창수(시인)

정의를 실현하는 잘못된 두 가지 양상이 있다. 

하나는, 자신의 과오나 결함을 덮기 위해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다. 공격받는 상대의 과오나 결함을 드러내는 데 성공을 거두더라도 자신의 과오나 결함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의의 실현과는 거리가 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실현하는 정의가 - 상대의 부정이 - 매우 자의적인 판단에 의한 경우다. 이때 자신의 정의는 상대를 공격함으로써 얻어지고, 상대의 부정은 자신으로부터 공격을 당함으로써 생겨난다. 공격하는 자는 정의롭고 당하는 자는 부정하기 때문에 당할 수밖에 없다는 무서운 논리가 내재한다. 

이 두 가지 잘못된 양상의 기미를 온전히 걷어내지 않는 한 정의는 실현될 수 없다. 무서운 것은 그런 ‘정의’가 실현됨으로써 공격자의 과오와 결함이 묻혀버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정의의 실현’으로 확정하며, 꼭 그만큼 성찰의 미덕이 세상의 노트로부터 지워져 버린다는 것이다. 비에 젖는 의암호를 바라보며, 내 과오와 결함을, 참담한 심정으로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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