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온다 / 이수지 / 비룡소 / 2021

계절이 오면 걱정이 함께 온다. 봄엔 황사, 여름엔 더위, 겨울엔 눈과 추위가 두렵다. 가을엔 걱정이 없나? 아니다. 짧은 가을 뒤에 계속될 긴 겨울을 걱정한다. 걱정의 이유에는 돈이 있다. 아름다운 사계절은 돈이 많이 든다. 계절을 누리기 위해, 계절을 나기 위해서는 돈이 든다. 요즘은 사는 곳에서 계절을 느끼는 게 아니라 어디를 가서 계절을 누리는 게 당연해졌다. 벚꽃 명소에 가고, 바다에 가고, 스키장에 가는 게 보통의 삶이 되어버렸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미디어에선 여기여기는 꼭 가라고 시끄럽게 알려준다.

올 초에 건강을 이유로 매일 산책을 했었다. 집에서 한 30분 정도 걸으면 강둑길이 나오는데 거기까지 갔다가 강을 둘러보고 돌아왔다. 매일 같은 길을 걸으면서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그때를 자세히 느낄 수 있었다. 나무와 강물 빛, 기온 등이 조금씩 달라졌는데 그중 나무의 변화가 가장 눈에 잘 들어왔다. 헐벗은 나무에 새순이 돋더니 어느새 꽃봉오리가 맺히고 한두 송이 슬쩍 꽃이 피다가 어느 날엔 만개했다. 늘 봄이 짧다고 생각했었다. 꽃 보러 가야 하는데 일하느라 꽃도 못 보고 봄이 간다며 아쉬워하는 게 연례행사였다. 그런데 매일의 산책을 통해 봄은 천천히 느리게 오고 지나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활의 대부분을 우리는 실내에서 보낸다. 온도 차가 크지 않은 실내 생활이 익숙하다 보니까 계절도 냉난방기처럼 조절하고 싶어지는 듯하다.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기대하고 사계절의 다양함을 느끼기보다 미디어를 통해 계절을 느낀다. 어디를 가고 무엇을 준비해라, 미디어에서의 계절은 관광과 소비를 촉진시키는 소재일 뿐이다. 이는 자연을 대상화하여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걸 잊게 한다. 우리는 계절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인데 언제부터인가 사계절이 견뎌야 할 뭔가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여름은 점점 올라가는 기온으로 피하고 싶은 계절이 되어버렸다. 

이수지 작가의 《여름이 온다》는 우리가 얼마나 여름을 좋아했는지 알려준다. 책을 펼치면 아이들의 물놀이, 구름, 천둥, 번개, 소나기를 만날 수 있는데 여름의 생명력 안에서 맘껏 뛰어놀았던 그 여름을 만날 수 있다. 에어컨 전기세와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는 여름이 아니라 뭉게구름과 맨발의 여름을 만끽할 수 있다. 가벼운 옷차림과 물장난을 실컷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설레는 마음으로 여름을 기다렸던 때가 생각났다. 또 여름과 관련된 기억엔 신나는 것이 많다. 선풍기 바람맞으며 먹던 옥수수, 학교 수돗가에서 하던 물장난, 장대비 맞으며 슬리퍼 신고 첨벙거리며 걸어갔던 하굣길, 별이 유난히 많았던 여름밤. 

그런데 지금의 여름은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비가 내리지 않는 요즘엔 인사로 주고받는 날씨 얘기에도 걱정이 많다. 하지만 삶은 걱정하는 마음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이 책을 만나는 동안만이라도 다가오는 여름을 음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덮을 땐 여름의 하늘과 나무를 다시 한번 더 바라보게 될 것이다. 

《여름이 온다》는 비발디 〈사계〉중 〈여름〉에 모티브를 두어 음악처럼 책도 3악장 구성을 따르고 있는데 처음과 끝에 연주자들이 등장하는 구성이 인상적이고 악보가 이야기의 배경이 되고 일부가 되는 것도 재밌다. 그리고 크레용과 색종이로 이야기를 표현했는데 단순한 선과 색으로 역동적인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 참 멋지다. 또 책을 싸고 있는 겉 커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고, QR코드로 작가의 작업 과정도 엿볼 수 있다. 그림책이지만 여름 나기가 숙제 같은 어른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김순남(봄내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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