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앞 둔 이재수 시장 인터뷰
탈성장 기조 속 시민이 주도하는 지속가능 도시 제시
자치·문화예술·공동체 회복·친환경·복지 등 정책 우선

수고 많았다. 퇴임을 앞두고 과거를 떠올려보자. 왜 시장이 되려고 했었나?

정말 스스로에게도 자문자답하면서 묻고 또 물었던 얘기이기도 하지만 시장이 삶의 최종 목표였으면 나는 꿈을 잃은 사람, 실패한 사람이었을 거다. 내가 목표하고 중심에 뒀던 것은 시장 자리가 아니라 시장 자리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환경 분야의 대표적 고전 《성장의 한계》가 출간된 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서유럽의 학자, 기업가, 정치인들이 참여한 ‘로마클럽’이 경제성장 제일주의가 향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시대를 앞서 과학적으로 분석·전망한 보고서로서 무자비한 개발과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자원고갈과 환경파괴 등으로 인류 문명이 붕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망은 맞아가고 있다. 나 또한 오래전 생활협동조합을 만들어 생명 운동을 할 때나 시의원으로서 의정활동을 할 때도 삶의 위기, 생명의 위기, 생태의 위기에 대응한 실천과 전환을 강조했었다. 그것이 시장이 되어서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춘천에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길, 성장에 얽매인 소위 ‘큰 거 한 방’의 정치방식에서 벗어나 탈성장 기조 속에서 시민이 주도하는 지속 가능한 도시, 양적 성장보다는 삶의 질을 중시하는 전환도시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런 비전을 구현하기 위한 대표적인 정책은 무엇이었나?

우선 버스노선 개편과 나무 심기, 지역 먹거리 선순환체계 구축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차도를 계속 넓히고 주차장을 만들고 이런 것들에 투입되는 사회적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자동차가 독점해 왔었던 도로 구조를 사람과 자전거와 자동차가 함께 공존하는 도로를 갖춘 전환적 도시가 되려면 도로를 줄여 도심에서 자동차 타고 다니는 것이 불편하게 만들고 대신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만들어야 한다. 도로의 경우 소양 2교에서 공지천까지 2.3km 도로가 그 상징이고 시작이다. 또 당장은 불편하더라도 자가용 대신 버스를 선택하게 될 시민들을 겨냥해 시내버스운영 체계를 개편했다.

나무 심기도 도심과 외곽마을 동네 곳곳에서 4년간 약 400만 그루가 식재됐다. 굉장한 양이다. 나무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기도 하지만 시민의 생명에 대한 근원적 심성을 되살리고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5~6년 후 춘천에 푸르름이 더해질 것이다.

먹거리의 경우, 아이들에게 생산지 안정성이 불분명한 농산물이 아니라 생명이 깃든 먹거리를 먹이고 싶었다. 그래서 친환경 농산물 생산 농가를 육성하고 먹거리통합지원센터를 통해 생산자 이름을 단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는 체계를 만들었다. 이윤을 우선하는 거래에서 농업인의 인격과 소비자의 신뢰로 작동되는 지역먹거리 선순환체계의 구축은 도시의 대전환을 위한 혁명적 변화였다.

하지만 논란과 어려움도 많았다.

물론이다. 시내버스 개편의 경우 초기 불편이 너무 컸고 특히 어르신들을 힘들게 해드려서 내내 가슴이 아프다. 민선 8기 시정에서 잘 보완하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최근 버스 이용자가 대폭 느는 등 효과가 나타나고 있어서 앞으로 자가용을 이용하던 시민들이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1억 그루 나무 심기는 몇 년에 거친 사업인데 1억이라는 상징성이 현실적 성과를 가린 면이 적지 않다. 앞서 언급한 것을 포함해 여러 정책들이 과거와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을 했었기 때문에 시민들은 불편하기도 하고 낯설고 어색하기도 했었던 것 같다.

개발을 등한시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개발을 등한시한 게 아니라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 억제한 거다. 대형 개발사업이 추진되면 그로 인해 자신의 삶, 동네 자연, 이웃, 경제, 아이들 환경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를 따지지 않고, 집과 땅값 이야기만 하는 사회가 됐다. 그게 춘천이 갈 길은 아니지 않은가? 개발이 시민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시대는 끝났다.

성장이 도시의 유일한 아젠다여서도 안된다.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정치인들이 굉장히 비겁하게 했다. 과거 춘천에 고속도로가 생기고 전철 복선화가 되면 모든 게 다 이루어질 거라고 얘기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영원한 성장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는 멈춰야 한다. 성장이 멈추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비전과 패러다임을 갖고 도시 운영의 원리를 바꿔야 했다. 우리 안의 자원을 통해 생활 속에서 문화를 즐기고 협동경제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다 그런 이유였다.

시민주권, 공동체 회복, 어르신, 장애인 등에 대해서도 무척 강조했다.

이제껏 시민은 들러리 대상으로서 구조화된 의존형 삶을 살아왔다. 이제는 시민 스스로 자기 영역에서 “내가 너한테 내 삶을 맡기지 않을 거야. 내 공동체의 행복은 내가 결정할 거야”라며 주체로 전환해야 한다. 시장은 시민 스스로 행복을 구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줄 뿐이다. 똑똑한 권력, 시민의 행복을 책임지는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구호일 뿐이다. 시민은 시장의 독점적 권한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시민주권이 필요하다.

시민이 자기 결정권을 경험하고 이 도시에서 구현되면 다음부터는 양도할 수 없는 자기 권리가 된다. 이를 위해 시민이 주인인 도시를 선언하고 시민의 권리를 일상에서 구현하는 숙의 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 틀을 하나둘 갖추어 나갔다. 읍면동마다 주민이 의사결정, 최소한의 집행권한을 갖는 주민자치회를 만들었다. 마을 자치를 통해 시민의 주인의식, 자긍심이 살아나고 이웃이 복원되기 시작했다. 어린이 잼잼 놀이터, 주민 주도의 꽃길 조성, 마을 돌봄프로그램, 아파트와 마을의 작은 축제 등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이웃공동체의 복원은 가장 큰 과업이었다. 우리나라가 복지선진국이라고 하지만 계량화된 기준에 들지 못해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이 정말 많다. 이웃의 어려움은 이웃이 잘 알기에 공동체를 중심으로 마을 복지기획단을 만들어 ‘선한 이웃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초고령 사회에 어르신은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문제 해결의 주체이다. 어르신의 전문지식과 경험, 지혜는 춘천의 새로운 동력이고, 도시의 위기를 극복하는 집단 지혜이고, 공동체를 복원하는 어른이고 울타리다. 재단법인 ‘지혜의 숲’이 만들어진 이유이다.

누군가를 배제하는 공동체는 제대로 된 공동체일 수 없다. 장애인도 소중한 시민이다. 그래서 2020년 9월 전국 최초 장애 인지적 정책 조례 제정, 권리 중심 공공일자리사업, 장벽 없는 도시 조성사업, 반다비 체육센터 건립, 장애인 콜택시, 장애인 저상버스, 춘천시 휠체어농구단 등 장애 인지적 정책을 추진했다.

이 시장의 시정에서 문화정책이 손꼽힌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춘천이 낙후되고 발전이 덜 되었다는 생각에 매였다. 그런데 춘천이 그리 열등한 도시인가? 이런 자기 비하는 정치인들과 성장 지상주의자들이 만들어 놓은 덫인지도 모른다. 춘천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고 외부의 힘에 의존하기보다는 우리의 자원으로 행복한 도시를 만들고 싶었다. 우리의 자원 중 으뜸은 문화예술이다. 또 인간 내면의 근원성을 끄집어내는 대단한 힘을 지녔다.

그래서 문화도시다운 참모습을 구현하고자 시정에 문화예술의 비중을 높였고, 춘천 곳곳에서 문화예술의 향연을 펼쳤다. 약 200억 정도였던 문화예술 예산은 500억이 넘게 늘었고, 정부로부터 법정문화도시로 인정받아 200억의 예산도 확보했다.

도시 곳곳이 문화살롱이 되고, 예술이 지역사회의 보편적 활동으로 도시의 전환을 이끌고 있다. 봄내극장도 옛 중앙교회 원형을 유지하여 리모델링 했고, 옛 기무부대 관사는 고층아파트가 아니라 예술촌으로 조성하여 생명의 요람이 됐다. 타 지역의 예술인들이 춘천으로 삼삼오오 모여들고 있다. 아이들은 ‘통합예술교육 1인 1예’로 문화 감성을 키우고 있으며, ‘춘천학 연구소’는 춘천이 매력 있고 품위 있는 도시임을 연구·증명하고 있다. 이런 흐름이 이어진다면, 시민의 자존감이 높고 품위 있는 진짜 행복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4년을 돌아볼 때 중앙 및 지역 정치에 대한 솔직한 평이 궁금하다.

광화문 민주주의에서 생활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중앙의 정치 세력은 변하지 않고 있다. 분명한 어떤 노선을 정해놓고 치열하게 토론하며 투쟁하지 않는다. 줄을 세우고 ‘넌 돼, 넌 안 돼’ 이것만 하고 있지 자기 이야기 자기 논리가 없다. 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은 당선 가능성에 매몰돼 있고 도의원과 시의원은 줄 서기에 급급하다. 그러니 새롭고 건강한 정치 세력들이 크지 못하고 이야기도 꺼내지 못하고, 사람 따라 줄 서는 구태가 반복되고 있다. 지역 정치권도 ‘시민을 위해서 몸 바치겠다.’, ‘무슨 개발을 하겠다.’, ‘뭘 유치해오겠다.’ 이런 말은 많이 하지만 새로운 어떤 가치와 철학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드물다.

지역의 선택, 결정 권한을 가로막으며 상상력을 제한하는 중앙의 관료들, 중앙의 정치권들이 진짜 개혁 대상들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중앙 중심에서 지역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헌법 개정을 통해서 분권이 명확히 명시되고 자치가 보장돼서 생활 민주주의가 일상화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 바뀐다. 

끝으로 시민들에게 인사와 하고 싶은 말을 들려달라.

지난 4년 진심으로 고마웠다. 문화도시사업, 청년청, 지혜의 숲, 먹거리지원센터 등 민선 7기의 사업들이 그래도 꽤 이러저러한 형태로 생활 속에 스며들어 지천이 되고 전환의 씨앗이 되었다. 지천의 물이 흘러와 장강을 이루듯이, 각 사업에 참여하고 역할을 해주신 시민들의 수고와 노력이 언젠가 춘천 역사의 큰 물줄기가 되고 큰 숲이 될 것이다. 

훗날 그 초석을 민선 7기가 다졌다고 평을 듣게 된다면 참 보람될 것 같다. 끝으로 다시 한번 ‘전환’을 강조하고 싶다. 전환이란 별거 아니다. “지금처럼 살면 안 되겠어. 지금처럼 살아가는 방식은 지구를 괴롭히는 거고, 나와 이웃을 괴롭히는 짓이야. 이런 생활을 하지 말자.” 그게 전환이고 도시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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