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의 미학적 지평을 넓힌 탁월한 문장

오정희 작가는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완구점 여인》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저녁의 게임》으로 이상문학상(1979)을, 《동경(銅鏡)》으로 동인문학상(1982), 《불꽃놀이》로 동서문학상(1996), 《구부러진 길 저쪽》으로 오영수 문학상(1996) 등을 수상하며 한국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2003년에는 독일에서 번역 출간된 《새》로 ‘리베라투르상’을 수상했다. 이는 해외에서 한국인이 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사례로서,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작가는 국어의 미학적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받는 탁월한 문장을 통해, 존재와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근원적인 불안과 슬픔에 사로잡힌 여성적 자아의 내밀한 감정과 극복을 형상화한다. 《불의 강》, 《유년의 뜰》, 《바람의 넋》, 《불꽃놀이》, 《돼지꿈》 등의 작품집이 있으며, 장편소설로는 《새》, 동화집 《송이야, 문을 열면 아침이란다》를 비롯해 《내 마음의 무늬》 등 다수의 수필집을 펴냈다. 많은 작품이 영어·독일어·프랑스어 등으로 번역 출판됐다. 2007년에는 그의 문학 인생 40년을 기념하는 문집 《오정희 깊이 읽기》가 출간됐으며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다.

오정희 소설가

김유정 문학촌 개관 20주년 ‘대한민국 문인 아카이브’ 사업으로 전석순 작가(김유정 문학촌 멘토 작가)와 기자는 오정희 소설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Q. 2007년부터 오랜 시간 참여해온 동인문학상 심사위원을 지난해를 끝으로 퇴임했다. ‘마음에 여운과 빛을 남기는 소설’을 기준으로 심사했다는 말이 기억난다.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소설은 무엇인가?

우리가 문학을 배울 때는 문체가 어떻고 플롯이 어떻고 등 많은 걸 배우지만 작품을 볼 때 그런 것을 구분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소설을 읽고 나서 “문체가 좋아서 좋다.” 또는 “구성이 좋아서 좋다.” 이런 것보다 작품이 주는 감동, 내 마음에 남은 그 무엇이 작품을 기억하게 한다. 그런 면에서 나를 비추어 볼 수 있는, 어떤 거울 같은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소설은 우리가 당연하고 무심하게 살아가는 이 세상이, 사실 얼마나 이상한지 그리고 사람들은 얼마나 이상한 생각을 하고 얼마나 이상한 행동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상투적이지 않고 폭넓게 작가만의 시각으로 일깨워준다. 결과적으로 작가가 어떤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독자에게 무언가 질문을 던지고 생각할 거리를 남기며 독자의 몫을 많이 남겨 주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Q. 작가는 글을 쓸 때 경험이 미치는 영향을 크게 받는다. 당신의 글에서도 ‘전쟁에 대한 경험’을 전하는 문장이 유독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전쟁은 당신의 삶과 문학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나?

만 두 살 반 때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전쟁의 상흔이 이어진 60년대에 유소년기를 보냈으니 전쟁은 나의 감성과 세계관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전쟁 중에 굶주렸던 기억, 전후 한국 사회의 불안이 나의 영혼을 흔들었다. 

어른들은 어느 순간 생활이 완전히 파탄 나서 발밑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 세상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다 잃어버린 듯했다. 그런 사회 속에서 우리가 자랐고 나의 비극적 세계관을 형성했다. 세상에 대한 불신, 삶에 대한 불안 이런 것들이 다 그 시절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내 작품이 명랑하고 행복할 수만은 없는 것 같다. 

Q. 많은 작가들이 습작기에 영향받은 작품으로 당신의 소설을 꼽는다. 반대로 당신이 습작기에 영향받은 작가 혹은 작품이 궁금하다. 습작기 시절의 일화를 들려주어도 좋다.

어린 시절에 책을 좋아하는 큰오빠가 《현대문학》, 《사상계》 등을 구독했는데 거기에 실린 단편소설들을 읽으며 “소설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걸 어렴풋이 이해하며 자랐다. 중고등학교 때는 플로베르, 도스토옙스키 등 19세기 서양 소설들을 좋아하고 많이 읽었다. 

작가들은 습작기에 수많은 선배 작가들을 내면화하면서 작가가 되어 간다. 나 역시 선배들한테 많은 영향을 받았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에 황순원, 김동리 선생님의 소설을 읽으며 문체를 다듬었고, 손창섭, 오영수, 최인훈, 이호철 등 전쟁을 겪은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읽었다.

Q. 한국문학이 활발히 번역되면서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일이 많다. 당신의 작품 《새》도 독일의 주요 문학상 중 하나인 ‘리베라투르상’을 수상했었다. 한국문학이 세계로 더 뻗어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우리가 가진 고유성을 잃지 않으면서 지구촌에서 함께 살아가는 인류 공동체라는 인식 아래 보편성을 획득하는 게 중요하다. 작가들 특히 젊은 작가들은 자기 안에 갇히지 말고 패기 있게 눈을 크게 뜨고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 아울러 능력을 갖춘 번역자 양성이 굉장히 중요하다. ‘한국문학번역원’에서도 많이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새》의 경우, 아무 일면식도 없던 이화여대 독문과의 독일인 교수와 독문학자 둘이 먼저 번역하겠다고 나섰다. 한국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개인의 삶이 무너지고 거기서 파생되는 아이들의 비극이 독일도 역시 겪고 있는 이야기라서 크게 공감했던 거다. 독일어 번역본이 나왔을 때 독일에서도 우리가 다 같이 고민해야 할 문제라며 크게 호응했다.

Q. 김유정 선생은 짧은 생을 살았지만 깊이 있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중 각별하게 좋아하는 작품과 이유는 무엇인가?

그 시절에 어떻게 그런 감각을 갖췄는지 정말 놀랍다. 이야기와 표현이 토속적이면서도 굉장히 현대적이다. 특히 《봄·봄》을 볼 때마다 감탄한다. 어떻게 ‘봄’과 ‘봄’사이에 점을 찍을 생각을 했는지 말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시각적으로도 상당히 뛰어나다.

개인적으로는 《산골나그네》, 《떡》 등을 좋아한다. 1930년대 우리 소설들이 대개는 현실을 핍진하게 그려내는데 머물지만, 선생의 작품들은 토속적 삶의 리얼리티를 탁월하게 담으면서도 끝에는 비극적 환상성을 띠면서 굉장히 희귀한 감동을 준다. 김유정은 그런 점에서 다르다고 생각한다.

Q. 당신의 작품 중 《유년의 뜰》, 《저녁의 게임》, 《새》, 《중국인 거리》 등 이미 많이 알려진 작품 말고 꼭 한 번 읽어보길 바라는 작품이 있는가?

어떤 평론가가 중편 《구부러진 길 저쪽》이 생각할 거리를 많이 담고 있음에도 비교적 묻힌 소설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구부러진 길 저쪽》은 예전과 다른 마음을 가지고 인물보다는 한 도시를 상징화하려고 썼던 소설인데 덜 알려졌다. 김유정 선생에게는 《동백꽃》, 《봄·봄》 이렇게 회자 되는 소설들이 있듯이, 내 경우 《중국인 거리》, 《유년의 뜰》 이런 작품이 따라온다. 

작가들은 그렇게 규정이 되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내 안에 뭐가 더 들어있지?’, ‘쓸 것이 더 뭐가 있을까?’, ‘내 안의 나도 모르는 어떤 부분들을 들여다봐야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Q. 제25회 만해대상 문예대상을 수상했을 때 “여전히 쓰고 싶은 글이 많아 남아 있다”라고 말했었다. 그 말에 설레였던 독자들이 많았을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인가?

올해 들어서 하고 있던 일 몇 가지를 내려놨다. 시간에 쫓겨서 읽지 못했던 좋은 책들을 아주 자유롭고 즐겁게 진심으로 읽고 싶다. 또 사람과 일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그냥 마음을 다해서 살고 싶다. 글쓰기도 포함된다. 문장을 그 어떤 성패에 대해서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고, 한 줄 한 줄 마음을 담아서 쓰는 시간을 갖고 싶다.

정리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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