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사과 나무 그늘 아래의 일

다산한 여자 같은 저 나무는 많이도 늙었다

몇 차례 온 몸을 쏟고 또 한 배를 갖은 걸 보면

몸통이 들썩일 정도로 숨소리가 크겠다

국적을 옮겨 시집 온 여자가 그

꽃사과 나무 아래를 지나간다

돌 지난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아이에게 무슨 말을 건네고 받지만

그 말이 무엇인지는 알 수는 없는 일

곰곰 무슨 말을 주고받았을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푸른 말이 붉은 말로 옮겨 가는 일

그늘을 다 건너뛰고 저녁을 맞는 일

꽃사과 나무 아래서 하루를 산다 해도

알 수 없는 일 명명할 수 없는 일.

싹둑 전지한 자국, 욕망을 참은 흔적들만

알아듣는 내밀한 그 일.

 김창균 시집 <먼 북쪽> 중에서

 

 

시인의 능청을 보면 웃음이 나오다가 끝내 엄숙하다 못해 전율이 온다. 사람 사는 일이 자연의 일과 자연스레 스미는, 내밀한 경지를 시인은 이토록 간단하게 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좋은 시는 단단하고 군더더기가 없게 마련인데, 이 시 또한 말을 붙이기가 쉽지 않다. 누구나 읽으면 확연히 이미지가 떠오르고 의미가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한승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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