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시인)

다시 한번 분명하게 말씀드리겠다. 언론에서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 나를 “친여 성향의 시인”이라는 프레임을 씌운 후 즤들 맘대로 들씹어댔지만, 나는 민주당 지지자였던 적이 없다. 언제나 보수 참칭 반민주 부패 기득권 세력을 반대했을 뿐이다. 그 대안으로서 ‘차라리’ 민주당이 존재했을 뿐이다.

오늘 최강욱 의원에게 당원자격 정지 6개월 징계가 결정되었다. 8월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당선이 유력한 최강욱 의원의 손발을 묶은 음모이고 당내 페미니스트들의 위력 확인이라는 해석이 보인다. 열린민주당 합당 조건이었던 개혁조치들을 무화시키려는 당권파들의 난동이라는 비판도 보인다.

모르겠다. 작금의 우리나라 시민 정서에서 진보 정치인의 ‘성희롱’이라는 낙인이 얼마나 치명적인가는 날아가는 새들도 안다. 내용을 잘 모르는 시민들은 이 징계로 인해 최강욱 의원에 대해 씻을 수 없는 성범죄를 저지른 정치인이 아닌가 하는 왜곡된 인식이 심어지게 되었다. 민주당은,

이로써 윤석열 정권에 대항할 수 있는 중요한 저격수를 막았고, 미래 자산을 짓밟았고, 국힘당과 다를 바 없는 권력욕의 아수라장을 과시했고, 개혁에 관심 없는 기득권 정당의 본색을 명백히 드러내었다.  

윤석열 정권의 무능과 무책임과 비상식 행보에 맞서 싸울 투지도 실력도 없는 제1야당의 실상, 참담하다. 국민에게 각자도생하라는 대통령에 제 밥그릇만 지키면 되는 야당에 경제폭망 쓰나미에… 국민으로 살기도 힘들고 사람으로 살기도 고달프다. 

정치인 최강욱, 인간 최강욱의 건재와 평화를 빈다. 당신은 기필코 다시 일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페친 물갈이가 시급하다.

작년에 빌딩 판 돈 주식에 몰빵해서 지금 폭망에 폭망을 거듭하다가 오늘은 아예 익사 직전까지 몰렸는데 내 페친들 중에 주식이나 경제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분들이 안 계신다. 오늘 딱 한 분 봤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 친구를 사귀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거 뭐 순 페친들이 날마다 꽃 사진이나 올리고, 자두가 알이 작다는 슬픔에 젖어 있고, 김주대 시인처럼 자기 그림 팔아댈 궁리에만 골몰해 있거나 돈도 안 되는 정치인 욕으로 날밤을 샌다. 

좀 건전하다 싶으면 어젯밤에 애인과 술 마신 자랑질인 데다가 어제 오늘은 숫제 알아듣지도 못하는 피아니스트 때문에 흑흑 울기까지 한다. 아, 이거 뭐 이래서야 언제 작년에 팔아치운 빌딩값 본전이라도 찾을 수 있겠나.

배낭 잃어버리면서 그 안에 낑겨넣어뒀던 삼선추리닝, 지난 번 성남 모란장에서 1만5천원 주고 산 그 삼선추리닝까지 잃어버리는 바람에 멘탈이 해체 지경에 몰려있는데 페친들마저 대통령을 닮아서 경제 문제에 통 대책도 관심도 없으니 이를 어찌하면 옳단 말인가. 

이렇게 페북살이를 할 순 없는 일. 부자감세 서민증세 정책에 환호하고 있는 극상류층 페친들만 남기고 이참에 싸악 물갈이를… 하고 나면 나는 또 얼마나 외로워질까. 아아, 하늘은 왜 류근을 낳고 되지도 않을 주식을 낳고 거기다 돈 같은 거 관심도 없는 페친들을 낳았단 말인가! 시바, 시바, 조낸 시바!


내가 당신에게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순간 내 온 영혼의 근육을 다 바쳐서 그 발음의 처음과 끝을 다 살아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주셔야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물론 믿음의 장르가 분명하겠지만 나는 당신에게 믿음을 말하고 싶지는 않아서 아주 천천히 내가 당신을 믿으면 되지요,라고 발음해 보는 것이다.

내가 믿으면 되어요.

슬픔은 지금 사라진 충주역 개찰구 앞에도 있고 조치원역 지붕 위에도 있고 달래강변 달맞이꽃들에게도 있고 세상의 모든 빗방울 속에도 있다. 나는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답게,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답게 또 이 아침의 언어로 발음하는 것이다. 사랑해요, 

비가 그쳐서 얼마나 다행한지 모르겠다.


언젠가 시쓰는 선배를 따라서 치악산 금대계곡에 간 적이 있었다. 말은 계곡이었지만 차를 세워놓고 물 건너서 산중턱까지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거기에도 초야에 묻혀서 시를 쓰는 선배가 살고 있었다. 가끔 토종꿀 같은 것을 팔았던 것 같다. 

인적이 아예 없는 산에 집 한 채가 있는 게 참 신기했다. 계곡에서 그 집에 이르는 동안 인가라곤 노인 부부가 염소를 키운다는 농막이 한 채 쓰러질 듯 비탈에 기대어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때도 술병이 심하게 나서 거의 기어다니다시피 숨만 겨우 쉬고 있었다.

나를 데려간 선배는 내가 술병이 나서 빌빌거리자 나를 놀려댔다. 저 아래 염소 키우는 영감님이 일년에 봄가을로 한 번씩 꼭 열흘쯤 술을 몰아서 마시고나서 물도 안 마시고 보름씩 이불 속에서 낑낑 앓곤 하던데 딱 그 상태로군! 

치악산에 있던 저 집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그보다도, 겨우 한닷새 몰아서 술 마신 나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살아있는 일이 점점 더 치욕 아니면 기적의 몸매를 선택한다. 아아,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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