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

하창수(시인)

요즘은 거의 그렇게 하지 않는 듯한데 예전 사람들은 영어 공부할 때 단어만을, 그것도 사전에 적시된 수많은 뜻풀이들을 죽어라 외었다. 이게 거의 소용없는 짓이었다는 걸 알 때쯤이면 거의 ‘영포자’가 되어 있었는데, 이건 일종의 트라우마로 작용해 영어공부 얘기만 나오면 “난 영어에 소질이 없어”란 말로 장막을 치고는 영어가 매우 재수 없는 언어인 양 거들떠보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그러니까 단어를 죽어라 외는 게 아무런 소용이 없는 짓이 아닌 것이, 언어란 결국 단어로 구성된, 일테면 ‘거대한 사전’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되었던 것은 죽어라 외운 것이 아니라 그 단어가 가진 여러 개념들을 확연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는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다는 것, 그 개념들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용례는 싹 무시한 채 철자로 이루어진 단어의 이미지만 자신의 뇌에 덕지덕지 붙여놨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 단어가 가진 여러 개념들은 하나로 관통하게 마련인데 그 관통하는 바를 익히는 방식을 취하기만 하면 다음은 우리의 뇌가 저절로 알아서 조합해낸다. 이건 과학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다. 가령, speculation이라는 단어를 보자. 이 단어는 ‘생각’과 관련이 있다. 대표적인 개념이 ‘추측’이다. 알지 못하는/알려지지 않은 뭔가(something that is not known)를 넘겨짚어 보는 것이다. speculation의 또 다른 중요 개념은 ‘투기(投機)’다. 대량손실의 위험이 있지만 상당한 이득이 있으리란 희망을 가지고(in the hope of making a large profit but with the risk of a large loss) 물건이나 주식을 구입하는 행위. ‘추측’과 ‘투기’라는 두 개념은 ‘생각/사고’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관통한다. 이 관통하는 바를 연결고리로 삼아 활용의 예를 함께 살펴볼 때 speculation은 온전히 뇌에 각인된다. 그저 사전이 간단히 정의해놓은 개념들만 외우는 건 오히려 쓸데없는 정보로 뇌의 숨통을 막아버릴 뿐이다.

‘관통하는 무엇’은 하나의 단어가 가진 여러 개념들을 꿰는 데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서로 다른 단어지만 하나로 관통하는 무엇을 발견하게 될 때 ‘새로운 관념/인식’이 생겨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건 문학이 가장 활발하고 가치롭게 향유하는 대목이다. 가령, 결혼에 관한 니체의 저 유명한 언설, “불행한 결혼생활은 사랑의 결여가 아니라 우정의 결여에 의해 일어난다(It is not a lack of love, but a lack of friendship that makes unhappy marriages).” 나이든 부부들이 흔히 하는 “우린 우정으로 살아”라는 농담이 사실은 니체라는 대철학자의 고매한 철학적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데, 이 언설에서 우리가 발견하는/발견해야 하는 것은 ‘사랑’과 ‘우정’을 관통하는 그 무엇이다. 그 무엇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 ‘사랑’에도 ‘우정’에도 전혀 뜻밖의 새로운 개념이 생겨나고, 우리를 결속시켰던 것의 그 새로운 실체 앞에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이제는 거의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행간을 읽다(read between the lines)”는 말의 진의가 여기에 있다. 가령, 《논리철학논고》를 탈고한 것으로 더 이상 탐색해야 할 철학적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겼던 젊은 비트겐슈타인으로 하여금 “아, 더 있었구나!”라는 인식을 가져다줌으로써 마침내 《철학적 탐구》를 완성시키게 한 것도 거칠게 요약하면 바로 이 ‘행간’이었다. 누군가 던져놓은 말의 겉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에야 비로소 만나지는 것. 이 또한 문학이 가장 요긴하고 절절하게 소화해내는 대목이다. “당신 오늘 뭐해?”가 함유한 저 다양한 의미들, “뭐가 두려운 거야?”라는 말이 포섭하는 서로 다른 상대적 개념들의 놀라운 충돌, “저는 새하얀 눈처럼 결백합니다!”라는 완고한 주장이 거느린 온갖 저열과 추잡과 간교와 비겁… 행간은 인류의 모든 밝혀지지 않은, 밝혀내었을 때 비로소 ‘발견’이라는 단어의 개념을 완성시키게 되는, 진짜 ‘의미’가 숨겨진 보석같은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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