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효 (춘천시 마을자치지원센터 선임)

우리에게 공동체라는 단어는 그리 낯선 단어는 아닙니다. 오히려 자주 쓰이는 익숙한 단어에 가깝죠. 그러나 이 공동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이 단어가 상당히 막연하고 어렴풋하게 느껴졌습니다. 공동체란 무엇일까요? 인터넷을 열어 초록색 검색창에 공동체를 검색해 보니 ‘특정한 사회적 공간에서 공통의 가치와 유사한 정체성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합니다. 사전적 의미를 생각해보면 공동체란 ‘사회적 공간’, ‘공통의 가치’, ‘유사한 정체성’이라는 조건이 충족된다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겠으며, 세상에는 같은 공간에서 유사한 가치와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지자체와 중간지원조직에서는 시민을 연결하고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정책과 사업을 만들어 내고 지원하는 것일까요?

지난 몇십 년간 우리는 고도로 성장해 왔습니다. 이 기간에 지역의 공동체들은 사라져갔고 공동체로 해결하였던 사회문화적 문제 중 상당 부분은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와 지자체의 몫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문제를 정부와 지자체에서 책임지기란 불가능합니다. 현재의 사회는 또 다른 대안을 요구하고 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다시 떠오른 것이 공동체입니다.

상부상조하는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존재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할머니 때, 아버지 때, 제 어린 시절에도 어렴풋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공동체가 형성되고 유지될 수 있었을까요? 그 시절에는 각 집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었지만, 삶의 거의 모든 것을 공유했습니다. 함께 일하고, 함께 먹고, 함께 놀고, 집집이 있는 대소사는 이웃을 불러 함께하는 잔치였고, 한마을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터전이 바뀌지 않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생활 환경은 삶을 위해 서로를 돌봐야 했고, 필요로 했으며, 같은 문화를 공유했기에 깊은 유대감을 바탕으로 공동체가 형성되고 다음 세대까지도 자연스럽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로 대변되는 급변의 시기를 거치며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었고, 주거공간도 점차 외부와 분리된, 개인적 삶이 중요시되는 공간으로 변화했습니다. 주거·교육·직업 등의 이유로 거주지역을 옮겨 다니는 일 또한 잦아지게 되니 지역공동체에 소속될 기회도, 노력도 차츰 줄어들게 되었죠. 성장이 중심이었던 이 시기에는 상부상조의 미덕보다는 경쟁을 학습했습니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필요로 하는 정보는 인터넷, 유튜브 검색을 통해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고, 상부상조하던 일상의 품앗이는 모두 상품화되어 돈으로 대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적 변화, 가치관의 변화로 인해 사람들은 다른 이와의 관계 맺음에 소극적으로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상의 필요와 문제를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지만, 백지장을 같이 들어줄 사람이 없는 다양한 필요와 문제를 오롯이 홀로 해결해야 하는 삶의 무게는 어떠할까요? 혼자서는 해결하기 벅찬 문제들은 여전히 있을 것이고, 때로는 의지하고 기댈 곳도 우리는 필요합니다. 시대가 변화했지만, 삶의 지지로서도 공동체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전통의 공동체를 그대로 재연하기엔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자연스레 피어난 관계가 없다면 공통의 필요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관계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나의 필요는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고 또한 가장 간절합니다. 내가 느끼는 필요는 알고 보면 다른 이웃도 필요로 하는 문제일 수 있고, 나아가서는 지역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공통의 필요가 있는 이들이 모여 문제를 공유하고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활동이 새로운 공동체의 시작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함께하다 보면 공통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끈끈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음 맞는 개개인들이 모여 작은 필요를 해결해 내었을 때, 혼자가 아닌 이웃과 같이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들이 모였을 때, 내 삶은, 우리가 사는 마을은, 또 춘천은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지 않을까요?

이철효(춘천시 마을자치지원센터 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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