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도시’ 2강, 스피노자 삶 통해 춘천의 이면 탐색
암스테르담과 아테네 번영의 공통점은 관용과 자유
26일까지 매주 화요일 19시, 몸짓극장 & 열린숲

“시민이 자유롭지 않은 도시는 쇠퇴한다. 자유의 범위는 관용의 범위와 일치한다. 관용이 넘치는 도시의 자유로운 시민은 창의성을 발휘하여 도시와 문명을 발전시킨다.”

지난 5일 축제극장 ‘몸짓’에서 열린 문화도시 조성사업 ‘2022 도시전환문화학교’ ‘이면도시’ 제2강, 도시와 철학 ‘스피노자는 왜 암스테르담에 남았나?’에서 성기현 한림대 철학전공 및 글로컬융합인문학 전공 조교수가 강조한 말이다. 강연은 네덜란드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1632~1677)의 삶을 통해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도시에서의 삶과 도시 번영을 고민하는 자리였다.

‘이면도시’ 2강은 스피노자의 삶과 철학을 통해 춘천을 새롭게 들여다봤다.

중세 이래 유럽은 가톨릭의 절대적 지배 아래 있었다. 하지만 1517년 독일의 사제 마르틴 루터(1483~1546)가 면죄부 판매 등 교회와 성직자들의 부패를 비판한 ‘95개조 반박문’이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어 기독교는 가톨릭과 개신교로 분열됐고, 16~17세기 내내 독일, 스위스,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 종교 전쟁이 일어났다. 그런 가운데 16세기부터 개신교를 믿은 네덜란드는 긴 독립전쟁 끝에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 독립 국가가 됐다. 이후 네덜란드는 뛰어난 조선 기술과 항해술을 바탕으로 향료 등 특산품 무역과 최초의 주식회사(동인도회사) 설립 등 전 세계 상업과 금융의 중심지로서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특히 수도 암스테르담은 대규모 무역이 가능한 항구도시로서 전 세계의 물건들과 사람들이 왕래하게 되자 학문과 예술도 융성하게 됐다. 

그 바탕에 관용(tolerance)이 있다. 상업을 위한 교류는 타인의 종교, 풍습 등 차이를 존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이자 해석 기하학의 창시자 데카르트(1596~1650)가 가톨릭교회의 영향력이 강한 고국 프랑스를 떠나 자유로운 분위기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이유이기도 하다. 17세기 암스테르담은 자유와 관용으로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다.

스피노자 가문은 스페인계 유대인으로서 유럽의 유대인 박해(1492년 알함브라 칙령)를 피해 포르투갈을 거쳐 네덜란드에 정착한 이민자 가족이다. 네덜란드는 종교적 자유에 가장 개방적인 국가였다. 유대인들의 상업과 금융업을 활용하기 위해 유대인 자치 거주 구역을 허가해주며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추방된 유대인을 받아들여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런 배경에서 스피노자는 명망 높은 유대인 상인 집안에서 1632년 11월 24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다. 스피노자는 전통 유대교 교육을 받으며 랍비(유대교 율법학자)가 되리라 기대를 받았지만, 어린 시절에 집안 어른들이 잇달아 사망하며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 

이후 스피노자는 부와 명예보다 삶에 지속적인 큰 기쁨을 주는 건 철학이라고 판단, 자유사상가 ‘판 덴 엔던’을 스승으로 모시고 새로운 자연과학과 데카르트 철학 등을 공부하며 철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스피노자는 유대교 율법, 사람의 형상을 한 인격신, 영혼 불멸 등 유대교 신앙의 핵심에 근본적인 회의를 던지며 ‘신, 즉 자연(Deus sive Natura)’이라 주장했다. 이로 인해 스피노자는 종교재판을 받고 유대인공동체에서 영구적으로 추방되는 가장 가혹한 수준의 파문을 당했다. 이후 렌즈 세공 등으로 연명하며 《데카르트 철학 원리》, 《신학정치론》, 《윤리학》 등 뛰어난 저서를 펴냈다. 

스피노자는 비록 유대인공동체에서 파문되어 궁핍하게 살았지만, 철학연구와 저술을 자유롭게 이어갈 수 있었던 건, 네덜란드가 생각과 행동의 차이를 용인하는 관용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철학과 민주주의를 낳은 고대 아테네처럼 말이다. 사상과 학문, 예술이 융성한 암스테르담과 아테네는 활발한 해상무역, 문명교류로 인한 개방성, 비판과 토론이 자유롭고 활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성 교수는 “관용은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 감내이기보다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품격을 보여줄 수 있는 권리이다. 한 도시가 갖는 관용의 폭과 범위가 넓을수록 시민은 더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도시를 발전시킨다. 관용이 도시에 주는 장점이다. 하지만 전쟁 같은 위기상황은 관용을 사라지게 하고 사상적 둔화를 가져온다. 아테네도 그랬고 암스테르담도 그랬다”라고 강조했다.

강연 이후 이어진 아고라에서 시민협의체 봄바람 위원 정미경 씨는 자신이 경험한 도시 춘천의 매력(자연환경, 편리한 생활 인프라, 무료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프로그램 등)을 소개했고, 시민들은 ‘관용’을 키워드로 춘천에 대한 각자의 경험과 감정을 이야기했다. 쓴소리도 있었다. 귀향민이라는 시민 A 씨는 “한 국가와 도시가 특정 시기에 사회적 질서처럼 요구하는 관용의 미덕이라면 춘천도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움에 대한 저항, 이주민에 대한 낮은 포용력, 자신의 속내를 잘 표현하지 않는 성향 등을 춘천의 일상에서 많이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내면화되어 일상에서 드러나는 관용은 조금 부족한 것 같다. 문화도시부터 첨단지식산업 도시까지 구호는 화려한데 개방성과 비판, 토론은 미비하다. 춘천의 직업적 다양성이 부족해서 그런 거 같다”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이면도시’ 제2강, 도시와 철학 ‘스피노자는 왜 암스테르담에 남았나?’는, 춘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필요한 건 ‘관용’이라는 참신한 시각을 공유한 흥미로운 시간이 됐다. 

한편, 철학·인문학 강연과 시민토론으로 구성된 아카데미 ‘이면도시’는 7월 26일까지 매주 화요일 축제극장 ‘몸짓’과 아르숲 생활문화센터 ‘열린숲’에서 번갈아 열리며, 시민이 도시의 숨겨진 모습을 탐구하고 도시에 대한 새로운 철학 및 감각을 형성하도록 돕는다.

아카데미는 남은 강연에서 춘천시민에게 ‘도시를 떠나려는 이유’, ‘도시의 낯선 모습’ 등 다양한 질문을 던질 예정이다. 22일까지 각 강연 별로 신청할 수 있다. (문의 259-5435)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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