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상상마당 춘천 13~17일
공공미터협동조합 & 강원명진학교 학생들 작품
춘천 최초 시각장애인 배리어 프리 전시회

전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만지지 마세요! 눈으로만 보세요!”라는 주의문구에 반대하며 마음껏 만지고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전시회가 춘천에서 처음 열린다.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은 이 말이 상징하는 차별과 장벽에 반대하는 전시회이다. 춘천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연대한 작가상생조합인 ‘공공미터 협동조합’의 작가들(김영훈·문유미·신리라·유성호·이덕용·이승호·이재복·이효숙·지유선)은 보이지 않지만 다른 감각을 이용해서 작품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작품들을 제작했다. 또 강원명진학교에서 진행된 워크숍에서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제작한 작품도 만날 수 있다.

1) 강원명진학교의 학생이 작품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2) 노가윤 학생의〈맛있는 점심〉3) 관람객은 조각작품을 만지며 사물과 작품의 촉감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문유미〈삐삐머리〉4) 시각장애인들이 춘천지형을 손으로 느낄 수 있는 유성호 작가의〈호반의 도시〉      사진 제공=공공미터협동조합

김영훈 작가는, 시각장애인들이 손으로 만지며 느낄 수 있는, 에칭(Etching) 기법으로 제작한 동판화를 선보인다. 문유미 작가와 신리라 작가는 촉각으로 형태를 느끼는 FRP 소재의 단단한 조각 작품과 도자를 각각 제작했다. 유성호 작가는 춘천의 강줄기와 산을 부조로 표현하여 장애인들이 촉감으로 춘천의 지형을 알 수 있는 작품을, 이덕용 작가는 투박한 나무 로프를 잡고 따라가다 보면 소나무와 허브의 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이승호 작가는 점자가 새겨져 일상의 순간을 촉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터프팅 기법의 작품을, 이재복 작가는 시각장애인들이 손으로 만지며 작가의 터치와 물감의 질감을 느끼며 작가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회화작품을 선보인다. 이효숙 작가는 쓰다 남은 다양한 천 조각을 이어 만든 조각보를 통해 사람들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지유선 작가는 생활 속 흔히 사용되는 다양한 용기(틀)들과 신비스런 동물형상의 만남을 통해 낯선 세계를 창조한다. 

작가들은 전시회에 앞서 지난 5월 강원명진학교에서 시각장애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했다. 워크숍은 학생들의 감각 발달과 정서적 안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 테라리움의 확장된 형식으로 진행됐다. 학생들은 식물(다육이·허브)과 각종 오브제 등 촉각과 후각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작은 상자에 자신만의 작은 세상을 만들며 예술적 경험과 표현의 자유로움을 만끽했다.

워크숍 및 전시회를 기획한 문유미 작가는 “과거 내 전시회를 보러온 특수교사 친구가 시각장애인 학생들 대상 미술 수업의 한계를 아쉬워하고 전시를 볼 기회조차 없음을 하소연했다. 실제로 모든 전시회에 걸린 ‘눈으로만 보세요. 만지지 마세요’라는 주의문구가 시각장애인들의 문화향유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이 전시회는 그에 반대하며 시각장애인들도 미술작품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다는 작가들의 응답이다. 작품을 만져도 되는 전시, 눈으로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주의문구가 필요 없는 상황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동안 시각장애인들은 엄두도 낼 수 없었던 미술작품 감상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전시회 하나쯤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촉감으로 작품을 느낄 수 있는 전시를 기획했다. 문화 차원에서의 배리어 프리운동이라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 앞에는 여전히 수많은 벽이 있다. 가령 식료품 등에 점자 안내가 의무가 아니다 보니 시각장애인의 상품 선택권이 제한되고 있다. 점자 표시가 있더라도 단순히 음료, 탄산, 맥주 등만 구분할 수 있는 정도다.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벽을 느낀다. 우리의 메시지가 지역에서 장애인들의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없애는데 작은 울림이 되길 바란다. 아울러 이번 프로젝트에 도움을 주신 강원명진학교 학생들과 교직원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비장애인 관람객들은 전시장에서 안대를 쓰고 안내에 따라 로프를 잡고 이동하며 시각장애인과 같은 조건에서 작품을 감상한다. 이처럼 이번 전시회는 문화소외자들의 예술 향유의 장을 넓힐 뿐만 아니라 시각 예술 감상의 한계성을 극복하는 신선한 도전이라는 점에도 큰 의미가 있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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