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강원대학교 영상문화학과 강사)

‘나는 이렇게 망해야 할 사람이 아니다.’

난장판이 된 사무실에서 돈이 될만한 것을 분류하면서 든 생각이다. 무일푼으로 불모지 같은 춘천이란 도시에서 20명이나 되는 스타트업을 일구어냈다. 각종 지원사업 선정과 투자 유치까지 해냈다. 수많은 성공으로 5년을 달려왔는데, 딱 한 가지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서 결국 이 자리에 서 있게 되었다. 생각하면 억울하지만 어쩌겠나. 현실은 이미 눈앞에 있는데. 지금 시급한 일은 사무실의 집기를 정리하는 일이다.

 팔 수 있을 만한 컴퓨터와 모니터에 가격표를 붙인다. 이 수많은 컴퓨터와 모니터를 썼던 팀원들은 이제 더 이상 곁에 없다.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창업 멤버라고 하더라도 망하는 것에는 별수가 없다. 단 한 명. 나만큼 잘되길 기원했던, 못난 남편을 둔 아내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20여 명까지 회사의 덩치를 키워봤기에, 그만큼의 공간을 다시없던 일처럼 돌려야 한다는 것이 너무 막연하다. 둘이서 이걸 다 치워야 한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한때 생기가 넘쳤던 누군가의 자리에 주인이 없어진 지금, 어제까지 책상을 이쁘게 꾸미던 여러 물품들이 지금은 쓰레기가 되어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망한 회사의 뒷정리만큼 너저분한 마무리는 찾기 힘들 듯하다. 대형 쓰레기봉투에 물건들을 집어넣으면서 속으로 나에게 다시 물어본다.

안녕, 다시 못 볼 우리 회사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창업 초기, 어렵다는 팀빌딩부터 창업보육센터의 입주까지 원하는 것이 차근히 이루어졌었다. 누군가는 어렵기만 하다는 정부의 창업지원 사업도 순조로웠다. 작지만 소소한 성공들을 거두면서 매출이 발생했고, 이를 기반으로 각 보증기금에서 자금을 조달하여 어느 정도 회사의 형태도 만들었다. 게임회사였지만 스타트업이란 이름에 걸맞게, 긍정적인 사회적 가치를 발견하기 위하여 노력했고 상도 받았다. 그뿐일까. 모든 스타트업의 궁극적인 목표인 투자 유치까지 성공했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냈고 또 성공해냈다. 이제 탄탄대로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단 하나만 성공을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것만 해내면 악명 높은 데스밸리를 극복하는 것은 물론, 지역에서 대표 스타트업으로 자리 잡아 새로운 창업 모델로 제시될 수 있었다. 그 목표는 늘 우리가 꿈꾸던 일이었다. 바로 시장에서 통용되는 게임을 개발하여 출시를 하는 것이었다. 글로벌 단위로 서비스하는 우리의 게임!

하지만, 그 결국 목표를 이루지 못하였다. 지금까지 셀 수도 없는 정말 많은 성공을 거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단 하나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스타트업은 언제나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그 건곤일척의 기회는 리스크의 크기만큼 행복한 리워드로 돌아온다. 명운이 걸린 싸움을 운에 기댄 장면은 스타트업 세계의 도처에 있다. 아니 인생사가 그렇다. 누군가의 성공담은 사실 실패담일 될 수 있는 기로에서 가까스로 성공한 것이다. 나도 그런 멋진 결과를 위해 내 명운을 걸어봤다. 내 생애 가장 큰 싸움에 온 힘을 다해 승부를 겨뤄본 것이다. 결과는? 아, 제목에 적어놨지.

 콘텐츠 기업의 특성상 투자받은 금액의 대부분이 인건비로 투입이 되었다. 2년여간 개발을 한 게임을 출시하지 못한다면, 그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이다. 판단과 결정은 모두 내가 했다. 우리가 만들 수 있는 프로젝트로 판단했다. 아니 만들어야만 하는 프로젝트였다. 할 수 있다고 밀어붙였고 중간에 가시적인 성과까지 어느 정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마무리에 실패했다. 6개월 정도의 시간이 더 있었다면 가능했을까? 그것 역시 결과론이다. 주어진 기회가 있었으나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크기로 재단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해본 적이 없는 일의 크기라고 애써 변명을 해본다. 다음은 분명 성공한다고. 그런데 나에게 다음이 있으려나? 그런 걸 생각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지금은 이 난잡한 사무실을 원래대로 돌려놔야 한다.

쓰레기를 100리터 봉투에 던져 넣고 있다. 그리고 마우스와 키보드, 컴퓨터 선 등을 한 곳에 정리한다. 다시 혼잣말을 해본다. ‘나는 이렇게 망해야 할 사람은 아니다.’  아니지. 세상에 망하면 안 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망할 수 있다. 그렇게 대단하게 포장하지 말자. 다시, ‘나는 수많은 성공과 한 번의 큰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다’ 음… 지금의 상황이 이제야 설명이 되는 듯하다. 납득을 할 수 있는 마음이다. 비록 한 번의 큰 실패로 돌이킬 수 없는 경험을 하고 있긴 하지만, 정말 잘해왔다. 힘들지만 잘 헤쳐나갔다. 그 경험만큼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이제 조금이나마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청소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잘 해왔기 때문에 큰 실패도 있는 법이라고.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사실 스타트업에 대하여, 창업에 대하여 강의를 하시는 수많은 분들 중에 창업이라는 이 부담을 제대로 아시는 분은 많지 않다. 사실 내가 나를 포장하려면 나의 수많은 성공에 초점을 맞추고 핑크빛을 보여주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실패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이 완벽한(?) 기승전결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 역시 나를 보다 잘 설명해주는 길이 될 것이다. 옛날 로마가 패배한 장군에게 승리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강력함을 얻었듯이, 어쩌면 이 실패의 경험화를 해낼 이 연재가 나에겐 새로운 성공의 발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사무실 집기처럼, 한 번의 큰 실패가 가져온 “망했다”가 들려줄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지금부터 즐거운 미래가 가득한 스타트업 시장에 당당히 말할 거다. 나 망했노라고.

김민철(강원대학교 영상문화학과 강사)

키워드
#스타트업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