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현서(소설가)

드디어 꿈에 바라던 중학생이 되었다. 변두리의 작은 국민학교가 아닌 시내 큰 중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하여 만난 담임선생님의 첫인상은 어마하게 무섭게 느껴졌다. 첫날부터 그녀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한 우리는 ‘앞으로 1년은 죽었구나’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첫인상과 달리 무척 친절하고 열정적인 분이셨다. 시험을 앞두곤 모두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격려를 하시고, 체육대회를 앞두곤 단합을 강조하며 우리 반이 꼭 우승을 하자고 하며 줄다리기를 할 때는 어떻게 해야 이기는지 직접 손발을 써가며 설명을 하신다. 그때 난 선생님께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줄다리기 이기는 법을 배웠다. 선생님의 과도한 액션과 말투에 우리 반은 조회, 종례 시간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우리 반은 시험에서도 1등, 체육대회에서도 1등이었다. 전학생의 과목 점수와 총점, 평균이 시험지 종이 한 장에 모두 인쇄되어 나오고, 또 반별로 평균을 내어 순위를 내던 야만적인 시절이었지만, 1등이라는 결과를 받아든 우리 반은 더욱 사기가 올랐고, 항상 화기애애했다. 

한 번은 청소 검사를 받으러 교무실에 갔던 친구가 돌아와 지금 선생님이 교감 선생님께 혼나고 있다며, 조심히 선생님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자고 했고, 같이 있던 친구들 모두 그 말에 동의하며 몸을 사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특히 선생님) 심기가 불편할 때 몸을 사려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터득하고 있었다. 불과 열네 살의 나이에 우리는 어떻게 그런 걸 먼저 배웠을까. 교실로 오신 선생님은 죄인들처럼 웅숭그리고 있는 우리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왜 이러고 있냐며 수고했다고 얼른 집에 가라고 하셨다. 한 친구가 이 일을 일기장에 적었나 보다. 중학생이 일기 검사까지 받았다. 대강의 내용은 ‘선생님이 우리에게 화를 내실 줄 알았는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셔서 감동했다’는 얘기였다. 선생님은 이 일기에 대해 얘기하시며, 자신이 어린 시절에도 똑같았다고 자기 기분에 따라 학생들을 야단치는 그런 선생님이 싫었기에 절대 그런 어른은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하셨다. 우리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했다. 얼마나 불합리에 길들여져 있었으면 우리는 이런 상식에 감동을 받았을까. 

2학기가 되었는데, 선생님이 서울로 전근을 가신다고 한다. 울고불고하는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은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시며, ‘자기도 1년은 이곳에 머물 줄 알았다. 이렇게 빨리 가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하신다. 새로운 담임선생님이 오셨다. 이 선생님 역시 첫인상이 무섭긴 마찬가지였는데, 1학기 때 선생님과는 다른 느낌의 무서움이었다. 관찰력이 뛰어난 친구들은 선생님이 새로 오고 열흘 동안 매일 다른 옷을 갈아입고 온다고 했다. 열하루째 드디어 입었던 옷을 입고 왔다고 했다. 반 분위기는 1학기 때와 다르게 가라앉아 있었다. 2학기 중간고사 결과 우리 반은 꼴찌를 했고, 가을 체육대회에서도 우리 반은 꼴찌를 했다. 

모든 학생이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야 하는 그런 날이 있었다. 한 친구가 1학기 때, 담임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선생님, 우리 반은 모든 게 1등이었는데, 지금은 모두 꼴찌를 해요.’ 새 담임선생님은 그 친구의 편지를 큰 소리로 읽다가, 내가 니들한테 꼴찌 하라고 시켰냐며 소리를 지르며, 그 친구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 친구가 맞아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학교 교육에서 체벌이 전면 금지된 이유는 이런 선생들이 과거에 꽤 많았기 때문일 거다. 그날부터 우리는 새 담임을 ‘미친개’라고 부르며 빨리 겨울방학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같은 구성원인데, 선장이 누구냐에 따라 그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비교 체험 극과 극을 경험한 특별한 한 해였다. 너무도 달랐던 두 선생님의 모습이 얼마나 강렬했으면 아직도 잊히지 않는 것일까.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꿈을 말할 때,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이냐고 묻는다. 그에 앞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심현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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