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소통공간 ‘곳’ 입주작가 & 춘천 신진작가 교류전
30일까지 문예회관 전시장 회화·조각·동양화·서예·설치

니체는 《반시대적 고찰》에서 진정한 고찰은 반시대적일 수밖에 없으며 자신의 시대와 완벽히 어울리지 않는 자, 자기 시대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아 비시대적인자(비현실적인자)로 취급받는 자들이 진정한 동시대인이라 말했다. 현대 유럽을 대표하는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도 《장치란 무엇인가》에서 동시대인을 시대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는 자라고 말했다. 이들은 빛이 아니라 어둠을 지각하며 시대를 포착하고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과 희망을 찾아내는 이들이다. 이런 면에서 현실에서 찾을 수 있는 진정한 동시대인은 예술가들이다. 

그런 점에서 춘천문화재단이 오는 30일까지 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장에서 개최하는 교류전 ‘세계와 나, 그 사이’는 춘천의 ‘동시대인’들이 포착한 ‘동시대’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리이다. 이번 전시는 ‘예술소통공간 곳’의 입주작가 5인(김경원·홍기하·이한나·김민지·오세경)과 춘천 신진작가 5인(이수현·박예지·제현모·송신규·한선주)의 매칭을 통해 5개의 2인전이 한 공간에 펼쳐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세계 속에 내 던져진 ‘나’라는 예술가 개인이 ‘또 다른 나’와 만나 그려가는 5가지의 작은 세계가 전시장에 펼쳐진다.

‘세계와 나, 그 사이’에서 예술가들이 ‘동시대’를 바라보는 흥미롭고 깊이 있는 시선을 만날 수 있다.

첫 번째 섹션 ‘우리는 항상 거기 있었다’에서는 김경원 작가와 이수현 작가가 ‘동물’이라는 도상을 통해 사회의 시스템과 관계에 질문을 던진다. 김 작가는 젖소와 닭 등 대량생산되어 유통되는 동물들을 반복 표현하여 현대사회의 생산시스템과 몰개성을 이야기한다. 이 작가는 동물에 인간의 불안과 두려움을 투영하고 동물이 던지는 물음을 텍스트로 표기하여 관객에게 삶의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두 번째 섹션 ‘숭고하게 모던하게’에서는 홍기하 작가와 박예지 작가가 석고·돌·철 등 기초적인 재료를 깎고 다듬고 녹이고 쌓아 올리며 완성한 조각작품을 통해 모더니즘 조각의 예술적 가치를 재현한다. 두 작가는 마치 수행자의 고된 노동 같은 작업을 통해 타인과 세계와 관계를 맺는다. 

세 번째 섹션 ‘붓끝에서 부는 바람’에서는 이한나 작가와 제현모 작가가 고전과 현재의 연결지점을 찾아간다. 이 작가는 왕안석(王安石)의 〈권학문(勸學文)〉을 옮긴 10폭의 서예작품을 ‘책’을 모티브로 한 설치작업과 접목했다. 제 작가는 관동팔경의 명소인 〈낙산사〉, 〈죽서루〉, 〈구문소〉 등을 통해 동서양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표현방식도 다양해지는 흐름 속에서 옛것을 따르고 담으며 현재의 풍경을 새롭게 묘사한다.

네 번째 섹션 ‘부유하는 형태’에서는 김민지 작가와 송신규 작가가 먹과 연필을 재료로 부유하는 한 개인의 정체성을 시각언어로 이야기한다. 김 작가는 정착하는 삶을 향한 동경을 물방울이 흐르는 창밖 풍경과 나무에 투영한다. 송 작가는 개인의 정체성을 식물의 뿌리에 빗대어, 뿌리로 연결된 인간 꽃들을 통해, 나와 세계의 관계를 탐색한다.

다섯 번째 섹션 ‘무한의 주인’에서는 오세경 작가와 한선주 작가가 서사적 구성의 회화와 설치를 선보인다. 오 작가는 사회와 개인의 갈등, 유약한 인간이 거대한 사회와 시대 앞에서 느끼는 절망과 고독을 이야기한다. 한 작가는 무한한 자연 앞에 놓인 인간존재의 덧없음과 고독함의 이미지 속에 능동적 주체로 거듭나려는 자기저항과 극복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작가들은 회화, 조각, 동양화, 서예, 설치 등 각자의 방식으로 시대를 포착하고 부딪히며 나아가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전시 기간에 작가들과 소통하는 ‘아티스트 토크’가 진행되며 개나리 미술관 정현경 관장이 함께 참여한다. (문의 259-5436)

박종일 기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