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않아도 / 최은영 /  마음산책 / 2022 

“그때 우리는 사랑과 증오를, 선망과 열등감을, 순간과 영원을 얼마든지 뒤바꿔 느끼곤 했으니까. 심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다는 마음이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애쓰지 않아도》의 ‘나’가 온통 유나만 바라보았던 시간처럼 우리에게는 모두 ‘그때’가 있다. 친구, 연인, 혹은 가족들에게 이런 모순된 마음을 가져 본 그때. 그때를 지나는 동안 우리 마음은 나달나달해진다. 그래서 〈한남동 옥상 수영장〉에서 유진은 마음을 이렇게 말했나 보다. “마음이란 건 하도 걸어 물집투성이가 된 발바닥 같았다. 예쁜 눈물이 흘러내리는 얼굴이 아니라.” 

《애쓰지 않아도》는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과 장편소설 《밝은 밤》으로 익숙한 작가 최은영의 짧은 소설집이다. 여기에는 ‘그때’를 지나온, 그래서 ‘물집투성이가 된 발바닥 같은’ 마음으로 타박타박 걷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14편 담겨 있다.

이 이야기들 속에서 연한 마음을 지닌 존재들을 만난다. 스치는 바람에도 괴로워할 줄 아는 존재들은 타인의 아픔에 민감하다. 누군가에겐 집이 안전한 보금자리가 아니라 도망쳐야 살 수 있는 폭력의 공간이기에 무조건 집에 가라는 서태지의 ‘컴백홈’을 듣는 것이 힘들다는 〈숲의 끝〉의 지호, 닭과 오리의 생매장 뉴스에 몸서리치며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서 도살당하는 생명들의 최소한의 삶에 대해 피력하는 〈안녕, 꾸꾸〉의 그녀, 그리고 타인의 이야기에 기꺼이 시간을 내어 ‘커다란 귀’가 되어 주는 인물들, 모두 연한 마음을 지닌 존재들이다.

연한 마음을 지닌 존재들은 끝내 따스하게 연대한다. 작가가 동물권, 아동과 여성, 성 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목청껏 외치지 않고 그들의 마음을 좇으며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은 이 믿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작가는 차별과 편견을 걷어 낸 투명한 시선으로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는 존재들의 마음과 독자들의 마음을 연결한다. 이 연결은 다르지만 다르지 않음을, 약하지만 약하지 않음을 알아차리게 한다. 연한 마음들이 씨줄과 날줄로 만나는 순간이다.            

작가의 말에서 최은영은 사회적 약자들의 침묵을 요구하는 폭력적인 우리 사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인간성의 기준점이 점점 더 내려가는 기분을 느낀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많은 것들이 나아질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힘을 더해야 한다. 맞다. 연한 마음을 지닌 존재들의 연대, 그들이 씨줄과 날줄로 만나 새로운 결의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김정은(남춘천여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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