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사람들의 추억이 담긴 거리

시장으로 둘러싸인 강원도 최고의 번화가

한국전쟁 이후 현재의 중앙시장과 제일시장 터에 60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섰다. 1954년에는 중앙시장이 세워졌고 그 주변으로 농수산물 도매시장이 형성돼 장사치들의 행렬이 육림고개까지 이어졌다. 맞은 편 요선동에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미제 물건을 파는 좌판이 즐비했다. 1956년에는 춘천 최초의 건물형 시장인 요선시장이 올라갔다. 그사이에 끼어있는 명동이 춘천 최고의 번화가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동네 이름도 서울 명동처럼 번화하다고 해서 명동이라고 붙였다. 

사방으로 생기는 극장도 명동의 번영에 한몫했다. 1956년 춘천 최초의 극장인 소양극장이 조양동에 들어섰고 육림극장이 1967년에 개관했다. 문화, 소양, 중앙, 제일, 신도, 남부극장이 명동과 중앙시장 주변을 에워쌌다. 극장 구경도 하고 쇼핑도 하려고 강원도 전역에서 젊은이들이 명동으로 몰려들었다. 

1973년 무렵부터 닭갈비거리가 형성되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25개의 닭갈비 가게가 경쟁하듯 손님을 끌어갔다. 냉동 닭을 쓰지 않고 지역에서 갓 잡은 닭을 쓰기에 다른 지역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으로 유명했다. 70년대에 유행하기 시작한 디스코텍은 1982년 통행금지가 해제되며 전국에서 불붙듯 문을 열었다. 명동에서는 팽고팽고 디스코클럽, 포인트 디스코클럽이 성업했다. 

명동은 밤이면 불야성이 되었다. 선술집 ‘선비촌’, 라이브 맥주집 ‘초원의 집’ 등에는 술꾼이 우글거렸다. 디제이의 재미있는 진행과 게임 덕분에 다닥다닥 붙은 좌석은 손님들로 촘촘하게 메워졌다. 육림극장에서 명동으로 가는 비탈에 있는 ‘비탈에 선 카페’도 어둠을 즐기기 안성맞춤인 공간이었다. 

시와 연극과 음악이 있던 추억의 공간

예술가들 역시 명동을 배회했다. 카페 오페라에서는 매달 한 번씩 시 낭송회가 열렸다. 이무상 시인 등이 주축이 돼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는 수향시낭송회였다. 전원다방은 예술가와 식자층의 아지트였다. 다방과 살롱에서는 수시로 음악감상회나 연극 공연이 열렸다. 명동은 그야말로 낭만의 공간이었다. 

1988년 춘천인형극제가 시작됐다. 시민들은 가면을 쓰고 명동거리를 걷는 퍼레이드에 참여했다. 1989년 시작된 춘천마임축제의 주요 무대도 명동이 되었다. 2002년 방영된 ‘겨울연가’는 명동을 동남아시아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로 만들어주었다. 

1996년 9월 21일 명동 옆에 미도파백화점(현 엠백화점)이 개점했다. 매장 면적만 2,671평 규모였다. 1997년 명동 지하에 352개의 점포가 들어선 춘천지하도상가가 개장했다. 2005년 명동 뒤편으로 100여 개 점포 규모의 브라운5번가가 조성되었다. 명동은 가히 강원도 최고의 쇼핑 중심지였다. 

명동에는 추억이 있다. 40~50대라면 누구나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팔짱을 낀 채 명동거리를 걷고 스낵집에서 떡볶이와 칼국수를 먹었다. 연인들은 명동에서 만나 데이트를 했다. 밤이면 선술집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방과 카페, 맥주집에서는 음악을 선곡하는 디제이의 손놀림이 바빴다. 강원도 최고의 쇼핑 중심지였던 명동은 춘천의 중심이자 추억의 중심이었다.(계속)

김효화(춘천원도심 상권르네상스 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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