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착각 /  
이진우 지음 / 휴머니스트 펴냄 

2017년 7월 12일 푸틴은 결심한 듯 보였다.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역사적 통일에 관하여]란 글을 통해 ‘나는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은 한 민족, 즉 하나의 전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천명했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라는 위대한 고대 키예프 군주의 이름을 계승한 푸틴의 머리엔 이반 일린의 ‘기독교 전체주의’ , 레프 구밀료프의 ‘유라시아주의’, 알렉산드르 두긴의 ‘유라시아 나치즘’이 똬리를 트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2008년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 2014년 남부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동부 돈바스 지역에 친러 세력을 지원하여 내전을 일을 켰을 때도 미국과 나토는 소극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푸틴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1945년 이래 긴 평화의 시기에 우리는 핵전쟁으로 인류가 멸망할 수 있다는 인식 아래 국제적 갈등은 근본적으로 외교와 제재를 통해서만 해결되어야 한다는 ‘평화주의’를 형성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이러한 평화주의가 20세기 후반 동안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잊었는지도 모른다. 평화는 실제로 전쟁이 가져온 공포의 균형이었다.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테헤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서 전쟁과 같은 심각한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거짓말처럼 전쟁은 시작되었고, 우크라이나는 생지옥이 되었다. 누구의 책임이며 그 끝은 어디인가?

저자 이진우는 정치철학자답게 지정학, 국제정치학, 사회학, 역사학 등을 아우르는 넓고 깊은 시선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분석한다. 투키디데스-키케로-마키아벨리-홉스-니체-슈미트로 이어지는 현실주의적 전쟁론과 오늘날 국제관계의 법적, 윤리적 토대를 구축하는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에라스무스- 칸트-로크로 전승되는 이상주의적 전쟁론을 분석하며 전쟁의 철학적 본질을 파헤친다. 인류의 역사 3,400년을 돌이켜 추산해 보면 그중 258년 동안만 완전히 평화로웠다. 진실로 전쟁이 없는 평화의 세계를 원한다면, 우리는 전쟁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전쟁이 언제든지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유라시아의 서쪽 끝에서 러시아가 아시아화하면서 서구를 밀어내고 동쪽 끝에서는 중국이 미국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지금, 중국의 중화주의와 러시아의 유라시아주의가 결합하면서 지정학적 대분기(大分岐)가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찾아온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를 오랜 평화의 미몽으로부터 깨워놓았으며, 영구평화가 가능하다는 확신은 전쟁 사이 잠시 찾아온 ‘오랜 평화’가 빚어놓은 착각이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치열한 외교의 전장에서 삽질을 일삼는 지도자의 시대에 살고 있다. 걱정이다. 증말!

류재량(광장서적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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