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어서점 / 마음산책 / 김초엽 / 2021

포항공대 출신으로 한국과학문학상 대상, 오늘의 작가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작가. 인상적인 경력만으로도 나의 세속적 호기심이 이끌렸던 김초엽 작가의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나에게 생각의 전환을 이끌어내는 열쇠가 되었다. ‘나’와 ‘타인’의 관계, ‘존재’와 ‘영원’의 의미,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 등에서 내가 이전에 알고 있던 생각의 틀이 이지러지는 느낌이랄까? 

김초엽의 감각적인 열네 편의 짧은 소설로 엮인 《행성어 서점》은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작품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서로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라는 제목으로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과거의 누군가, 혹은 어떤 날에 대한 그리움과 애수가 드러난다. 2부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에서는 ‘이종(異種)’에 대한 혐오와 불화 속에서 공존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은 소설 속 한 구절로 드러나고 있다.

“개별적 개체성, 그게 인간일 때의 나를 가장 불행하게 만들고 외롭게 만들었어. 동시에 나를 살아가게 했지. 개별적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전체의 일부라는 건 모순이 아니야. 아니면 전체라는 건 애초에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 - ‘늪지의 소년’ 중에서)

표제이기도 한 ‘행성어 서점’에는 외국어에 능숙하지 못한 나를 솔깃하게 하는 ‘범우주 통역모듈’이 등장한다. 수만 개의 은하 언어를 지원하는 대단한 장치이지만, 행성어 서점의 책들은 행성어를 직접 배우지 않는 이상 책을 읽는 것이 불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이방인으로서의 체험, 어떤 말도 구체적인 정보로 흡수되지 못하고 풍경으로 나를 스쳐 지나가고 마는 경험’을 위하여 사람들은 망해가는 시골 행성의 행성어 서점을 찾는다. ‘읽히지 않음으로써 가치를 부여받는’ 것이라니, 나의 보편적 생각에 실금이 간다. 번역본이나 통역 어플 등을 통해 다른 언어로 쓰인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해도 그 언어가 가진 정서와 문화, 내밀한 의미 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까? 진리 또는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과 정성이 필요한 것이리라. 그것은 단순히 ‘언어’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고, 마음 또는 진실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시몬을 떠나며’에는 사람들이 모두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행성 ‘시몬’이 나온다. 행성의 모든 사람들이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 기하학적 문양의 가면을 쓰고 서로를 대한다고 하니, 뭔가 꺼림칙하고 괴기스러운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가면이 외계 기생물의 하나이며, 감정을 표현하고 알아볼 수 없게 된 시몬의 사람들은 그 가면을 받아들인 채 다른 방법으로 진심을 드러내는 길을 찾고 있다. 

“어차피 가면을 쓰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의 진심을 모르잖아요. 생각해보세요. 저는 지금 당신을 향해 웃고 있을까요? 아니면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어느 쪽이든, 그게 제 진심일까요?”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 - ‘시몬을 떠나며’) 

속내를 들킨 것처럼 내 속이 턱 막히는 것도 같고 뻥 뚫리는 것도 같은 지점이었다. 가면은 거짓 표정을 만들어 내는 대신 진짜 다정함을 베풀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시몬 사람의 말은, 타인과의 관계 또는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에 대해 고민해온 나에게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다. 표정으로 알 수 없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말투, 몸짓, 행동 등등을 통해 상대를 이해해간다. 외계 기생물과의 공존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갈 궁리를 해나간다. 어떤 표정으로 살아가는가보다 어떤 삶의 태도로 살아가는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김초엽의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을 따라잡는 것이 버거운 면도 있다. 그 속에 철학적 주제까지 담고 있어서 쉽지 않은 독서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김초엽의 소설은 내가 가진 상상력과 세계관을 확장시키며 편협해지는 사고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어준다. 그 속에 한 줄기 빛처럼 생각의 뿌리를 내리기에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한다. 

또한 출판사 마음산책의 짧은 소설 시리즈는 작품에 어울리는 그림들이 함께 하고 있다. 이 작품의 그림은 일러스트레이터 최인호의 작업이 함께 하면서 초현실적인 작가의 글과 담백하면서도 초현실적인 그림이 서로 잘 어우러지면서 작가의 상상력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있으니, 책 읽기의 즐거움이 한층 더할 것이다.

박혜진(유봉여중 교사)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