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 활동가 세르파 상게

네팔은 세계의 지붕이라 일컬어지는 히말라야산맥 중앙부 남쪽에 위치한다. 셰르파 상게(38·후평동) 씨는 다민족 국가인 네팔의 120여 개 민족 가운데 하나인  셰르파족(티베트족 계열의 고산족) 출신으로서 에베레스트 근처 작은 마을 ‘골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오랫동안 한국과 네팔을 오가며 마을 살리기 활동을 해오다 지난 2015년 한국인 아내의 고향 춘천에 정착했다. 상게 씨의 삶과 꿈을 소개한다.

마을 살리기에 눈을 뜬 셰르파 청년, 춘천에 오다

3시간만 걸어가면 에베레스트와 히말라야산맥이 한눈에 들어오는, 해발 2천700m에 자리한 고산지대 마을 ‘골리’에서 나고 자랐어요. 8남매 중 여섯째인데 집안은 늘 시끌벅적 활기가 넘쳤죠. 3~4천m 봉우리는 동네 뒷산 가듯이 놀러 다녔어요. (웃음)

놀이 활동가 세르파 상게

중학생인 14살 무렵부터 아르바이트로 등반을 시작했는데, 16살 때 네팔 중북부 히말라야산맥의 ‘영혼의 땅’이라 불리는 높이 8천163m 마나슬루를 일본 등반대와 오르다가 목숨을 잃을 뻔한 사고를 겪었어요. 그 후에는 등반대의 베이스캠프를 구축하는 일에만 참여하는 트래킹 가이드를 했어요.

2003년경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네팔 수도 카트만두(Kathmandu)로 갔어요.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사니까 의지할 사람도 없고 외롭더라고요. 그리고 낙후된 고향마을도 생각나고요. 그래서 저처럼 학업을 위해 고향을 떠나온 또래들이 모여 커뮤니티 활동을 시작했어요. 낯선 도시에서 서로를 돌보며 각자의 고향도 돌보자고 의기투합한 겁니다.

‘다시 마을로 돌아가기’라는 이름을 달고 오지 마을을 찾아가 도서관과 학교 만들기부터 마을 축제 복원 등 시골의 사라져가는 문화를 다시 되살리는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제 고향 ‘골리’에서도 위축되어가는 마을 축제 ‘둠지’를 다시 활성화하고,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힘 모아 집을 짓는 문화도 되살렸습니다. 

그러다 2007년 히말라야 트래킹 가이드를 하던 중 한국의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을 만났어요. 그들과 트래킹을 하며 마을을 살리기 위한 더 큰 그림을 그리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활동해오던 커뮤니티를 네팔 버전의 ‘품’으로 확장하며 네팔에서 마을공동체를 처음 만들었어요. 2008년부터는 한국과 네팔을 오가며 ‘품’을 통해 교육 및 문화 교류 활동을 펼쳤습니다. 카트만두의 트리부반 대학에 진학해서는 예술전공 학생들까지 참여를 이끌며 활동폭을 넓혔어요. 문화와 교육을 통해 낙후된 마을의 아이들에게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죠. 마을의 오랜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품’ 활동가인 한국인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일구고 공동체 활동에 힘을 쏟던 어느 날 인생에 큰 고비가 찾아왔어요. 2015년 4월 네팔에 7.8 규모의 강진이 일어나 삶의 터전이 무너졌습니다. 고민 끝에 가족과 함께 아내의 고향인 한국 춘천에 정착하기로 했습니다.

도시농업 활동으로 춘천에 정착

춘천에 와서 처음에 뭘 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그러다 도시농업에 관심이 생겼어요. 한국 사람들이 네팔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다고 생각하는 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물론 오래전에는 그랬지만 현대의 네팔은 한국처럼 청년들이 농촌을 떠나고 도시의 삶이 팍팍해졌어요. 

디지털이 세상을 완전히 바꿔놓았어요. 저의 고향은 수도 카트만두에서 하루는 차로, 그다음 이틀을 꼬박 걸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비포장이긴 하지만 자동차로 갈 수 있어요. 농촌 청년들은 소를 팔아서 스마트폰을 사기도 합니다. 새로운 세상과 정보를 접하며 꿈을 찾아서 네팔을 떠납니다. 네팔의 많은 청년이 코리안드림을 꿈꿉니다. 한국에도 약 7만여 명의 네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네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상담과 주기적인 만남을 통해 한국 및 춘천 정착을 위해서도 힘을 보태고 있어요.

1~2) 네팔 마을공동체 활동 시절의 세르파 상게(사진의 중앙), 3) 상게 씨는 ‘춘천놀이’에서 다양한 생태놀이터를 운영했다. 4) 트리 클라이밍 시범을 보이고 있는 세르파 상게         사진 제공=세르파 상게

한국도 농사짓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농촌 공동화와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죠. 농촌에서 젊은이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시농업을 대안으로 삼아 청년들이 농부가 될 수 있는 터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먹거리와 환경 문제의 대안도 될 수 있고요. 그래서 강원도시농업사회적협동조합에 이사로 참여해 활동했습니다. 그동안 춘천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농업교육부터 학교와 어린이집 등에서 텃밭 활동, 생태교육, 먹거리 교육 등을 펼쳤습니다.

‘놀이’에 눈을 뜨다

2020년 육아휴직을 계기로 강원도시농업사회적협동조합 이사 직책을 내려놓고 조합원으로만 활동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꿈이 생겼거든요.

아들을 돌보며 놀이 활동에 자연스레 관심이 커졌어요.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면 아이들이 스스로 놀 줄 모르고, 함께 어울려 놀지도 못하더라고요. 심지어 부모들은 낯선 아이들과 놀지 못하게 합니다. 어쩌다 함께 놀자고 모였어도 곧 각자 핸드폰 게임만 하더라고요. 어린이들은 신체활동을 해야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데 염려되더라고요.

아들을 데리고 춘천의 산과 호수 등 곳곳의 자연을 다니며 놀았어요. 때로는 지인의 아이들도 함께 데리고 다녔어요. 아이들과 부모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게 되며 바로 이거다, 춘천에서 놀이문화를 만들어가자 결심했어요.

지난해와 올해 춘천문화재단의 생태놀이터 예술놀이 축제 ‘춘천놀이’에 참여해서 밧줄놀이와 목공 프로그램 등을 운영했고, 오는 10월에는 ㈜나누스페이스의 ‘춘천 노리숲 축제’에서 놀이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입니다.

창업으로 꿈을 향해 한 걸음 더

춘천형 마을돌봄교육공동체 중 한 곳인 ‘온의동풍’에서 놀이강사로 활동 중입니다. 최근에는 남춘천초등학교 학생들과 어린이집 아이들을 대상으로 남춘천초 인근 ‘열린공원’에서 놀이 지도를 했어요. 처음에는 잘 모이지도 않고, 모여서도 핸드폰만 보던 아이들이 이제는 핸드폰을 집에 두고 옵니다. 함께 노는 게 제일 재밌다고 말해요. 하지만 아직은 놀이에 대해서 어른들의 인식이 부족한 건 아쉽습니다. 더 많은 아이들에게 즐거운 경험을 주고 싶어요. 

그래서 최근 교동의 한 골목에 놀이 전문 1인 기업 ‘플레이 하미(Play Hami)’를 창업했습니다. ‘하미’는 네팔어로 ‘함께’라는 의미에요. 오로지 놀이에 집중하고 싶어요. 아이들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놀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밧줄놀이, 트리플레잉, 트리하우스 만들기, 트리 클라이밍, 목공체험 등을 하며 자연에 대한 소중함을 인식하고 자유로움과 모험심, 도전정신, 협동심 등을 길렀으면 좋겠어요. 또 한국의 전통놀이도 체험하며 공동체 의식도 길러지길 바랍니다.

삶의 목표요? 우선 ‘플레이 하미’를 잘 키워가는 겁니다. 오는 9월 말에 첫 파일럿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다 함께 놀았으면 좋겠어요. 많은 관심바랍니다. 놀러 오실 거죠?! (웃음)

박종일 기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