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운순(강원이주여성상담소장)

처서가 지나자 하늘이 갑자기 깊고 높아졌다. 여름을 보내기 힘들어서 하늘마저 얼른 이 땅의 불온한 기운을 멀리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백 년 만에 올까 말까 한 폭우로 반지하에 살면서 노모와 언니 그리고 딸을 부양하던 여성 가장이 숨졌고 경기도에서는 70대 노모와 두 자녀가 숨졌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8년 만이다. 송파 세 모녀 사건에서 보듯이 대부분 여성이 가장이고 가족 중 중요 부양자 또는 가족들이 난치병을 앓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성은 그 자체로 남성보다 절대빈곤으로 내몰릴 위험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경기도 수원에서 벼랑 끝에 내몰려 죽음을 택한 세 모녀 중 둘째 딸의 남겨진 수첩에서 그동안 살아남으려고 분투했던 여성 가장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냥 가려 했는데 한 자 적는다”로 시작한 글은 경제활동을 하던 오빠가 이년 전 병으로 숨지고,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 후 난소암에 걸린 어머니, 희소병으로 아픈 언니를 대신해 본인이 책임져야 했던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처절하게 기록되어 있다.

다이애나 피어스(Diana Pearce)는 빈곤의 여성화라는 용어를 만들어 사회 정책적으로 여성 가장의 빈곤 문제를 세상에 처음으로 드러낸 학자다. 성인 빈민의 70% 이상이 여성이며 빈곤 가구의 반 이상이 여성을 가장으로 하는 가족임을 말하면서 여성 가족을 가장으로 한 가족이 빈곤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성별로 분절된 노동환경이라고 지적했다.

여성이 가난하게 되는 것은 생애 과정에서 작동되는 성 차별적인 노동시장 구조와 가부장적인 가족 규범, 그리고 다차원적인 배제와 차별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경제적 지원을 넘어선 통합적인 접근이 되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돈만 없는 게 아니에요. 주변 관계에서도 자꾸 소외돼요.”

얼마 전 현장에서 긴급 지원을 하다 만난 이주여성의 말이다. 빈곤은 금전적인 배제뿐만이 아닌 관계의 소외를 가져온다. 관계의 소외는 사회적으로 유용한 정보에서도 소외되는 사회적 자본의 결핍에 이르게 된다. 빈곤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이다. 구조적 문제라는 것은 더 많은 여성들이 빈곤해지도록 이 사회가 작동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밀즈(Mills, Charles Wright)는 ‘사회학의 임무는 개인과 개인들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관계 속에서 제기되는 쟁점을 이해하는 일’이라고 했다. 밀즈가 1958년 《사회학적 상상력》에서 공공의 책임을 주장한 지 반세기가 지났다. 여성 빈곤 문제에 사회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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