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미 (춘천여성협동조합 이사장)

나의 엄마는 40살의 나이에 돌아가셨다. 고2 올라갈 무렵 봄방학이 끝날, 혹은 시작할 무렵이었다. 아침에 헐레벌떡 뛰어서 등교를 하다가 발목을 접질렸고, 절뚝거리며 교실에 들어와 앉았다. 수업시간 중간에 선생님이 잠깐 나가서 이야기를 전해 듣더니 곧이어 나를 불렀다. 바로 알 수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그날은 이상하게 다리를 접질렸고, 엄마가 돌아가셨고 나오는 길에 교정에 떨어진 비둘기 사체를 보고 흠칫 놀랐던 날이다.

40살의 나이에 죽는다는 것은, 어떤 인생이었을까. 너무 젊지도 늙지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자기 인생을 생각해볼 나이에 죽은, 아이가 셋이 있었던 기혼여성의 죽음은. 

나는 생각보다 빨리 죽음을 상상해봤고, 일찍 제사상을 홀로 차려봤고, 그럼에도 맏이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아주 오랜 기간 느끼며 살아왔다. 

아프고 늙어가고 죽게 된다는 것. 어쩔 수 없는, 홀로 온전히 맞이할 수밖에 없는 ‘나의 죽음’에 대해 요즘도 가끔 생각해본다. 죽음을 상상할 때면, 내 주변의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마지막 순간에 슬프지 않고 잘 죽었으면 좋겠다.

무려 10년 전에 개봉한 영화 <멜랑콜리아>를 보면 두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녀들은 자매 관계로 이성적인 언니와 우울증으로 심약했던 동생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멜랑콜리아 행성을 보면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어떻게 침착해지고 어떻게 공포를 느끼는지, 어떻게 지구의 종말과 인간의 죽음을 마주하는지 보여준다. 커다란 행성이 지구와 충돌했을 때의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이기도 한데, 한동안 그 장면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그래서 보름달이 충만한 밤하늘을 볼 때면 ‘저 큰 행성이 날아오면 어떡하지?’ 혼자 걱정을 했다. 

최근 작은도서관 행사로 2명의 나이든 페미니스트를 초대하게 되었다. <여성의 몸, 여성의 서사>라는 주제로 늙어가는 몸과 아픈 몸, 그럼에도 꿋꿋이 그녀들이 써 내려간 한국의 현대사,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한다. 돌봄 노동에서 죽을 때까지 자유롭지 못할 여성들의 삶에 대해, 돌봄이 어떻게 사회화되어야 하고 나이듦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래서 오랜만에, 다시 질병과 죽음에 대한 책을 다시금 집어 들게 되었다. 아마도 자신이 ‘한창’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질병과 나이듦의 이야기가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어진다.’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에서 펴낸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를 읽으며 육아기 자녀를 둔 이후 새벽마다 자동으로 눈이 떠지는 나의 삶과 아픈 몸 때문에, 혹은 아픈 이의 간병 때문에 새벽에도 쉽게 잠들지 못하는 이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마흔세살의 나는 이미 돌아가신 엄마의 나이를 넘어서서 살아가고 있다. 가족의 질병과 나이듦은 외면하고 싶지만 결국에는 나의 얼굴 밑까지 찾아올 ‘현재’이기 때문에 외면할 수가 없다. 어떻게 죽을 때까지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나이든 여성의 삶을 구술사를 통해 풀어낸 최현숙 작가, 질병과 돌봄, 노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김영옥 교수 두 명의 선배 여성을 만날 날을 기다리며 나는 또다시 마더센터 언니들과 책모임으로 만난다. 새벽 세 시의 몸은 단절되지 않고, 대화로 이어져야 한다. 용기 낸 ‘말걸기’가 연결의 힘으로 우리를 더 의미 있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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