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는 보석으로 온몸을 치장한 왕자의 동상이 서 있었다.

어느 겨울날 밤이었다. 따뜻한 나라에 아직 가지 못해 남겨진 제비는 우연히 행복한 왕자의 눈물을 보게 된다. 왕자는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슬픈 도시의 모습에 마음 아파하며 제비에게 도움을 청한다. 부탁을 들은 제비는 왕자의 칼자루에 박힌 루비를 아픈 아이에게 물어다 준다. 왕자는 제비를 통해 몸을 덮고 있던 금조각들을 모두 나누어 주고, 마지막으로 눈에 박힌 사파이어까지 도려내어 가난한 작가와 성냥팔이 소녀에게 보낸다. 결국 행복한 왕자는 초라한 형체만이 남고, 심부름하던 제비는 따뜻한 나라에 가지 못한 채 왕자의 발밑에서 숨을 거둔다.

이 이야기는 1988년 오스카 와일드가 지은 동화 《행복한 왕자》(The Happy Prince)의 줄거리이다. 얼마 전 황효창 작가가 개인전을 통해 선보인 2005년 작품 <왕자와 제비>는 이 동화에 근거한 그림이다. 그는 이 시리즈를 198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그려왔다. 《행복한 왕자》야 말로 “왜 황효창은 ‘뻥 뚫린 눈의 인형’을 그리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2011년 구술한 책자, 《강원의 미술가를 찾아서 5》의 내용을 보면 그는 인형의 눈을 시꺼멓게 그리는 이유에 대하여 작가 본인만의 슬픔, 절망감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언급하였다. “왜 그렇게 그리느냐고? 인생 자체가 희망적이진 않잖아, 사람 자체는 절망이지 뭐. 술만 먹으면 좀 나을까? 이것도 내가 행복해지려는 노력인 거지. 나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리려고 하는 사람이지, 누구한테 굳이 희망을 주고자 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하자면 내가 아름다움 중 하나로 도입한 것이 ‘비애’야. 우리 삶에서 슬픔, 비애 이런 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것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사람들은 슬픔과 행복을 구분하는데 인생 자체를 보면 슬프고 애절한 것도 아름다움이고 삶의 일부분이지. 그걸 우리는 자꾸 벗어나려고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있는 그대로의 슬픔도 아름다움인 거야.”

눈에 박힌 보석을 나누어주고 장님이 된 왕자는 슬프지만 ‘행복한 왕자’다. 이 결코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명칭으로부터 우리는 황효창이 말하는 ‘비애미’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모순된 삶의 형태 속에서 우리는 그래도 삶이 끝나는 날까지 아름다움을 찾아간다. 팔순의 화가가 끊임없이 붓을 들 듯이…….

정현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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