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시인) 

그리운 당신, 9월이 왔습니다. 여름의 저 게을렀던 머리카락을 삭뚝 자르고 저도 이제 가을 속으로 단정하게 입장하겠습니다. 

오늘은 과녁이 잘 보입니다. 총소리 선명합니다. 당신도 씻은 듯 맑고 뚜렷한 9월 되시길 빕니다. 

그립다고 말할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고요하고 투명한 당신…


무슨 비가 하루 종일 내릴 수 있지? 덕분에 나는 하루 종일 앓았다. 그리곤 저녁이 되어서도 비가 그치지 않았으므로 30여년만에 비 오는 날 버스를 탔네. 서쪽으로 가는 버스는 언제나 아름다운 법이지. 

우산을 들고 버스 정류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려 본 게 언제쯤일까...라고 나는 나에게 정답게 물어보았네. 비 오는 날 버스를 타고 사랑하는 사람 만나러 간 건 또 언제쯤일까. 나는 참 많은 것을 잊고 산다는 사실을 깨닫곤 새삼스럽게도 깊이 뉘우쳤다. 너무 많은 것을 잊고 살았다.

그리고 나는 또 술을 마셨으니까 오늘은 또 불편한 꿈을 꾸겠지. 삶이 점점 더 불친절해지면 나는 또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서쪽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을까? 나는 술을 많이 마시고 안주를 적게 먹는 좋은 술버릇을 가지고 있다. 차창에 기대어서, 쓸쓸하다는 생각을 조금 했다.

사랑이 왜 이리 고된가요. 사랑이 왜 이리 아픈가요. 이게 맞는가요. 나만 이런가요...

아침에 바보같이 이런 노래를 들었어요. 울었습니다. 사랑이 고되고 아프다니요. 아, 저는 스물 여섯 살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사랑에 어찌 수식이 붙나요. ‘사랑’은 그 자체로 이미 완성이고 완벽한 건데... 이러한 설명은 얼마나 구구하고 구차한가요.

아침엔 슈베르트가 영혼에 이롭습니다. 이렇게 맑은 물에 숭어가 살다니...같은, 고딩 음악 실기 시험용 노래도 좋고요. 아아, 저는 ‘넘쳐 흐르는 눈물’을 들으며 또 웁니다. 봐쎄르푸르트 봐쎄르푸르트....

그리고 이 아침에 또 고백하는 거십니다. 사랑합니다. 아, 이 고되고 아픈 사랑!


이 시간엔 주로 소설가 이외수 선생이 깨어 계셨다. 우리는 서로 이 시간에 막, 서로가 깨어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며 소통을 하곤 하였다. 불편한 문장을 우리는 몹시 불편해 하였다. 이를테면,

하기와라 사쿠타로, 류시화, 김수영, 도연명, 박... 같은 문장을 사랑하는 거스로 아아, 새벽에 새가 울 때까지 울곤 하였다.

꽃의 이름에 대해서, 꽃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거슨 조금 부끄러운 게 아닐까? 라고 이외수는 말했다.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들에게 사람의 언어로 이름을 지어주는 거슨,

내 머리 속으로 얼마나 많은 언어들이 지나댕기는지 나는 울지 않고 말을 했다. 사랑해요, 라는 아주 고급한 문장을 나는 기억한다. 사랑해요, 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눈물이 나네. 

사랑은 왜 슬픈가. 아아,

이외수는 내가 흑흑, 울면 5초쯤 기다려줬다. 근아, 네 문장을 나는 알아본다. 그리고 이외수는 4월에 죽었다. 나는 지금 사랑과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애인은 어제 매우 취해서 지금 어쩔 수 없이 잠들었다. 들비도 잔다. 아아,

류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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