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이 돌보는 세계 / 조한진희 / 
다른몸들 기획 / 동아시아 펴냄

“그들은 그것을 사랑이라 말하지만, 우리는 부불노동(unpaid work)이라 말한다.” -1972년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캠페인’ 실비아 페데리치

장기요양, 요양보호 등에 등장하는 ‘요(療)’라는 한자어는 외국말로는 ‘케어 care’, 우리말로는 ‘돌봄’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경제학자 낸시 폴브레는 그녀의 저서 《보이지 않는 가슴》에서 “실제 인간의 경제 활동은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여성의) 보이지 않는 감정노동, 마음 씀, 타인에 대한 고민에 의존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돌봄의 본질은 관계성과 연결이다. 연결되지 않고 생명체는 생존 불가능하다. 따라서 돌봄은 인간과 생명체에 대한 연민, 동병상련, 용인, 희망의 마음에 기대어 수행하는 노동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안다. ‘나는 하기 싫고, 누군가 저비용으로 알아서 해주었으면 하는 일’이란 것을... 

물이나 산소처럼 돌봄 역시 인간에게 필수적인 요소임에도 이토록 저평가된 배경에는 생산노동과 재생산 노동을 분리하고 재생산 노동을 여성에게 떠넘겨 온 역사적 흐름이 있었다. IMF 금융위기 이후 이른바 ‘골목길 부조’ 또는 ‘모녀자매 안전망’이라는 사회적 암묵으로 지탱되어 온 돌봄 노동은 빈곤층 여성에게 저임금 형태로 외주화되었다. 가족 내 여성 구성원이 아니고는 누구와도 분담하지 못했던 돌봄을 ‘피 한 방울 안 섞인 이’에게 맡기게 되면서 발생하는 긴장과 불안, 기대, 그리고 억압은 돌봄 위기의 새로운 증상이 되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장시간 노동을 다른 돌봄 노동자의 불안정노동으로 보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과 안정성을 보장하는 노동 정책이다. 글로벌 북반구 중심의 환경과 노동착취를 근간으로 하는 ‘제국적 삶의 양식’은 생태적으로 지속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노동을 여성이나 글로벌 남반구에 떠맡기고, 식민지배를 받는 나라들의 자원을 약탈하며 유지된다. 이 책이 ‘탈성장’과 ‘자본주의 하지 않기’를 대안으로 선언하는 이유다.

“자립은 ‘의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의존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세상이 장애인용으로 되어있지 않으니 장애인은 의존할 수 있는 것이 무척 적습니다. 장애인이 너무 의존하는 게 아니라 의존할 게 부족하기 때문에 자립이 어려운 겁니다. 인간은 약함을 서로 보충하고 의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며 강해졌어요.” 106쪽 [권리]류재량(광장서적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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