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 소설집 <저녁의 게임>  
2020년, 문학과 지성사

오정희는 1968년 <완구점 여인>으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한 이후 굵직굵직한 문학상 수상은 물론 장편소설 <새>로 2003년 독일 리베라투르상을 받았다. 해외에서 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작가이기도 하다. 오정희 작가는 1947년생으로 올해로 만 75세다. 춘천에 정착한 지도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문단에서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은 그의 작품을 나는 2년 전 중·단편의 소설을 모아 엮은 오정희 문학선 <저녁의 게임>으로 작품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성장소설인 〈유년의 뜰〉, 〈중국인 거리〉를 비롯해 춘천을 배경으로 한 〈저 언덕〉, 〈구부러진 길 저쪽〉, 〈옛 우물〉 등 열한 편의 작품이 담겨 있다. 각 작품의 줄거리를 따라가기 쉽지는 않았다. 치밀한 묘사, 엄선하고 엄선하여 빚어내었을 아름다운 문장에 푹 빠진 탓도 있으리라. 유년 시절을 중심으로 다룬 <유년의 뜰>, <중국인 거리>의 주인공 노랑머리와 12살의 여자아이의 ‘삶의 고통과 절망’은 가슴 속으로 차가운 물이 차오르는 듯하였다. 특히나 아이들의 놀이에서 그 슬픔과 연민은 더 했다.

<유년의 뜰>의 노랑머리는 전쟁으로 분열되고 와해된 가정에서 도벽과 허기증에 시달리면서 자란다. 전쟁에 징집된 아버지의 부재, 술집 작부로 전락한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외출을 감시하는 오빠의 언니를 향한 폭력, 남편에게 버림받고 의붓딸 집에서 기생하는 할머니라는 존재는 공포와 부조리 그 자체이다. <중국인 거리>의 나는 피난지에서 폭력적인 군사 문화와 반공 이데올로기, 미군 상대의 성매매와 여성착취로 표상되는 항구도시 속 외로운 섬과 같은 소외와 경멸의 ‘중국인 거리’로 이주해온다. 여덟 번째 아이를 출산하는 어머니, 동거하는 미군 흑인 병사에게 창밖으로 던져져 죽임을 당하는 매기 언니를 보면서 불안과 초조 속에서 성장하는 12살의 소녀가 주인공이다. 

<중국인 거리>의 나는 치옥과 미군을 상대로 매춘을 하는 매기 언니 방에서 중국인 거리에는 없는 예쁜 옷과 악세사리, 화장품을 가지고 논다. ‘나는 커서 매기 언니처럼 양갈보가 될거야’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치옥이. 그녀의 욕망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은 놀이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비껴가지 않되 한 번 비틀어 버리는 놀이로 절망과 가난, 매춘의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놀이라니. 

‘집에 가봐야 노루꼬리 만큼 짧다는 겨울 해에 점심이 기다는 것도 아니어서…,  화차가 오고 몇 번의 덜컹거림으로 완전히 숨을 놓으면 우리들은 재빨리 바퀴 사이로 기어 들어가 석탄가루를 훑고 이가 벌어진 문짝 틈에 갈퀴처럼 팔을 들이밀어 조개탄을 후벼 내었다.…, 석탄은 때론 군고구마, 딱지, 사탕 따위가 되었다 (288쪽) 

12살의 여자아이가 놀이처럼 하는 ‘조개탄 도둑질’과 노랑머리의 도둑질 (닭 잡아먹기, 찬장 뒤지기, 엄마 지갑에서 돈 꺼내기)는 그저 지금의 고통에 찬 삶을 유예해준다. 이 아이들의 도둑질은 가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일시적인 배고픔을 이기는 절실한 ‘생존’ 그 자체이기에 처벌받아야 할 ‘일탈이 아니다’라고 변호해주고 싶다.  

노랑머리의 연극놀이는 또 어떠한가? 오빠는 의사, 언니는 천사, 노랑머리는 병자가 된 연극놀이. 병자가 아파하다가 죽어 천사와 함께 하늘에 오르는 것이 연극의 끝이다. 환자가 되어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고, 죽음으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아이들의 몸짓은 아프다.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날마다 만나면서 그들의 삶 속에서 시대를 읽는다. 소설 속 아이들에는 그들만의 방식인 놀이가 ‘해방을 위한 몸짓’이 되었고, 성장의 터널을 지나오게 했듯이 아이들은 삶과 놀이의 양식은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소설 속 아이들이 지나온 시대는 물론 현재에도 아이들은 그렇게 성장하고 있다. 감히 꿈을 펼쳐라 말하지만 않는다면.

박정아 (금병초 교사, 시민 독서 모임 춘사 톡톡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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