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홍석 (사단법인 인투컬쳐 상임대표)

우리 사회는 그동안 빠른 도시성장 과정에서 개발과 역사문화를 서로 반작용하는 법칙으로 인식했다. 역사문화는 경제적 효능감은 낮지만, 후대에 물려줄 교육적 가치를 위하여 보존해야 할 문화적 측면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역사문화를 문화관광산업과 도시개발의 원천자원으로 이해하면서 이를 지역발전 전략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중에 음식과 관련한 역사와 문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세계인들에게 높은 관심의 대상이다. 굳이 학자들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음식은 우리의 삶이 응축된 생활양식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문화행위이다. 그래서 음식을 살피면 우리의 근원이 보이고, 심지어 그 지역의 자연환경과 삶의 변화과정까지도 보인다. 

역사적으로 요즘처럼 음식을 두고 사회적인 관심사가 높았던 적도 없었던 듯하다. 오늘날 음식은 생활정보 뿐만 아니라 TV 예능프로그램, 다큐멘터리, 영화, 잡지의 익숙한 소재로 자리매김했다. 2015년 이후부터는 먹방과 쿡방이 신드롬이라고 할 만큼 유행해, 음식 관련 콘텐츠가 국민적 관심사로 부각됐다. 이런 변화에는 SNS, 블로그,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 매체의 영향이 크다. 그리고 스마트폰은 이용자들의 맛집 정보를 찾아주는 검색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전 국민을 맛에 열중하는 식도락가로 변모시켰다.

일반적으로 도시규모를 구분 짓는 기준은 인구이다. 하지만 인구수만으로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모습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저자 건축가 유현준은 아름다운 도시의 조건으로 작은 가게들이 많을수록 우연성이 넘쳐난다고 말한다. 이러한 거리가 많을수록 사람들의 삶은 더 풍요로워진다는 것이다. 결국 도시의 표정은 인구나 건물의 크기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소통이 가능한 도시 공간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가 오래된 도시는 장소와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도심 곳곳에 자리한 오래된 음식점에는 각종 먹거리, 주인의 음식 철학, 사람이 어울려 독특한 식문화와 함께 생생한 도시의 개성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오래된 음식점을 찾아내 그 맛을 확인해보는 것도 도시 여행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이다.

사람들은 흔히 오래된 가게를 가리켜 노포(老鋪)라 칭한다. 이웃한 일본과 중국에서는 노포를 3대 이상이 영업을 해왔거나 백 년 이상 가업으로 이어져 온 가게를 말한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노포의 기준을 다르게 정의하고 있다. 30년 이상 대물려 가게를 운영하거나 주인이 바뀌더라도 창업주의 운영철학이 지켜지고 있는 가게를 노포라 부른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60년대 이후 근대화와 산업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폐업으로 그 숫자가 급격히 줄어든 탓이 크다. 

하지만 노포는 단순한 가게가 아니다. 견뎌온 세월만큼이나 저마다의 특별한 이야기와 도시역사를 간직한 문화유산이다. 특히 오래된 맛집은 전통과 지역성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어우러져 한층 각별한 기억의 맛을 선사한다. 이렇게 노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추억이라는 흔적과 상호작용하며 오래도록 영향을 미친다.

이 같은 문화적 맥락 외에 우리가 노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지방의 가치가 변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최근 우리 사회 전반에 일어나고 있는 문화현상 중 하나가 레트로와 뉴트로라는 복고주의 열풍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과거의 추억을 소환하고 있는 걸까? 사회심리학자들은 현실에서 삶이 어려울수록 과거에 대한 향수는 커져만 간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라 행복했던 과거를 소비함으로써 다시 한번 그 기억을 경험하고픈 우리들의 소망이 바탕에 내재되어 있다고 해석한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국내 여행시장이다. 최근 여행트렌드는 명소를 둘러보는 관광에서 벗어 난 지 오래다. 여행자들은 그 장소가 내게 어떤 메시지와 이야기를 들려주는지에 대한 과정을 공유하기 원한다. 급기야는 젊은 세대 여행자를 중심으로 전국 곳곳에 숨어 있는 노포들을 보물찾기하듯 찾아다니며 SNS를 통해 그곳에서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 결과, 오래된 상점이나 음식점에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새로운 골목경제학을 창출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그동안 도시 확대과정에서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잃어버렸다. 그렇지만 오늘날 노포는 더 이상 우리들의 기억에만 잔존하는 추억의 장소가 아니다. 오히려 더욱 또렷하게 현재로 소환되고 있는 문화콘텐츠로 거듭나고 있다. 그리고 사람과 이야기, 감정과 기억을 연결하는 진정성 있는 길모퉁이 경제주체로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주위가 아무리 급변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기 마련이다. 도시가 영속성을 가지려면 무분별한 성장전략이 아니라 멈춰 서서 소중한 것을 다시 바라보며 도시의 본질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보편타당성의 도시는 다양성과 개성, 시민들의 삶의 가치가 우선시 되지 않고서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끝. 

오홍석 (사단법인 인투컬쳐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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