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학] 이병욱의 ‘내 젊은 날, 춘천에는’제 1회
[삶과문학] 이병욱의 ‘내 젊은 날, 춘천에는’제 1회
  • 이병욱(작가, 춘천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22.09.26 1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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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욱(시인)

내 젊은 날, 춘천에 ‘아폴로 싸롱’이 있었다.

비좁고 가파른 층계를 내려가 문 열고 들어가는 싸롱이라, 다른 데 없는 특유의 장면이 있었다. 오직 한 명씩 문 열며 나타날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따라서 아폴로 싸롱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이미 와 앉아 있는 이들의 눈길을 일제히 받을 수밖에 없었다. 흐르는 음악에 심취해 있는 모습들이었으므로 작은 거동이라도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듯 혼자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는 경우야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홀연 무대에 나타난 배우’ 같았다고나 할까.

그렇기에 여자애(여대생? 대입 재수생?)들이 그 문을 열고 나타날 때에는 부끄러운 듯 대개 고개 숙인 모습이었다. 혹 얼굴이 아주 예뻤다면 고개 숙이기는커녕 쳐들고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남자애들은 그와 달리 괜히 날카로운 눈매를 짓거나 담배를 입에 물거나 한, 나름대로 터프한 모습으로 그 문을 열고 나타났다. 그런 남자애들 중 특이한 애가 하나 있었다. 오른쪽 팔을 하얗게 깁스한 환자 모습으로 짐짓 노려보는 표정을 지으며 나타나던 것이다.

그즈음 극장가를 누비던 ‘무법자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장면이었다. 악당들한테 심한 폭행을 당해 몸이 온전치 못하게 된 주인공이 복수의 날을 기다리는 바로 그 장면 말이다.

그 남자애가 처음 지하공간에 등장할 때 톰 존스의‘I WHO HAVE NOTHING’ 이 처절하게 울려 퍼지던 걸 나는 기억한다. 아무 것도 없는 빈 털털이지만 당신에 대한 사랑 하나만은 충분하다는 가슴 아픈 외침. 하필 그 순간 ‘한쪽 팔을 하얗게 깁스한 모습으로 등장한’ 남자애는 팝송 내용 속 사내가 현실로 나타난 듯한 착각마저 일으켰다.

그 날 하루만이 아니었다.

틀어달라고 DJ에게 신청한 애들이 많았는지 한동안 아폴로 싸롱에는 ‘I WHO HAVE NOTHING’이 수시로 울려 퍼졌던 거다. 그렇기에 그즈음 한쪽 팔을 하얗게 깁스한 채 문 열고 등장하는 남자애는 제철을 맞은 듯 자주 그런 처절한 장면을 우리한테 보였다. 요즈음으로 치면 ‘무법자가 등장하는 뮤직비디오’ 영상이 반복되는 것 같았다.

순간 ‘저 녀석이 거짓으로 한쪽 팔을 하얗게 깁스하고 이 싸롱을 오는 게 아닐까?’하는 의심이 내게 퍼뜩 들었다. 깁스야, 재료를 사다가 집에서 혼자 해도 되지 않나. 왜냐면, 그래야만 남달리 터프한 사내의 등장으로 보일 테니까.

자신을 일제히 지켜보는 눈길들 중에 여자애(여대생이나 대입 재수 여자애)들의 눈길도 섞여 있으니 그런 노력을 쏟을 만했다. 안타까운 것은 아폴로 싸롱에 오는 여자애들 수가 남자애들에 비해 극히 적었다는 사실이다.

​내 젊은 날 춘천에 아폴로 싸롱이 있었다.

이병욱(이병욱(작가, 춘천문인협회 회원)

출처 : 《춘천사람들》 - 시민과 동행하는 신문 (http://www.chunsa.kr)

)

<덧붙임> ‘아폴로 싸롱’은 70년대 춘천 시내 한복판에 있었던 지하 음악다방의 상호입니다. 당시 젊은이들이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서 종일 팝송과 송창식 같은 우리나라 젊은 가수들의 노래를 감상했습니다. 흡연은 허락됐지만 음주는 허락되지 않았던 나름, 점잖은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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