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칠 수필가

“나는 고독한 외로움을 넘어 세상과 대화하고 싶은 소망을 품어왔다. 세상과의 사귐과 대화를 통하여 나를 세계인의 한사람으로 넓히기를 바랐다. 그 실현 방법은 글쓰기를 통하여 이념의 지평을 확대하는 길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문학의 바다로 헤엄쳐 나감은 편협한 분쟁의 아귀다툼을 다스리면서 보편적 세계관이 지향하는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수필가 김영칠(76) 선생이 자신의 저서에서 밝힌 말이다. 70세를 종심(從心)이라 일컫는다. 마음대로 한다는 뜻으로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가 “나이 일흔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어서거나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70세를 훌쩍 넘어서도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김 선생의 삶이 바로 그러하다. 그가 삶과 책 그리고 청년을 위한 애정 어린 조언을 들려줬다.

Q. 예순이 다 되어 등단하셨는데, 이전의 삶이 궁금합니다.

1947년 화천 봉오리에서 태어났어요. 아버님은 전쟁 중에 돌아가시고 가난을 면하기 위해 철원으로 이주했어요. 1974년 철원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철원에 있다가 1988년 강원도청으로 전출되어 이후 보건국, 내무국, 관광국, 도의회 등 여러 부서에서 근무하며 업무능력을 인정받았어요. 덕분에 2003년 9월 철원 부군수로 발령받았습니다. 이후 2006년 명퇴할 때까지 33년을 공직에 몸담았습니다. 재임시 대통령표창, 국무총리표창 등을 받았고 퇴임 때는 홍조근정훈장을 받았습니다. 이후 제7대 강원도의회 의원, 강원도 문화원연합회 사무처장, 강원도 새마을 문고 회장, 성균관 전의 등을 역임했습니다. 현재는 한국문인협회 회원, 강원 문인협회와 강원수필문학회 이사, 춘천수필문학회 고문, 철원향교 장의, 강원도의정회 이사, 강원도행정동우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문학에 입문한 계기와 등단 과정이 궁금합니다.

어머니가 홀로 8남매를 키우시며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고된 하루가 지나고 해가 저물면 사촌 형이 어머니와 조카들에게 고대소설을 읽어줬습니다. 초등학생인 나도 어느새 소설에 빠져들었죠. 문학에 대한 동경심이 자리하게 된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난하고 힘든 시절 제대로 된 문학 수업은 꿈도 못 꿨죠. 그저 공직생활 속에서 배우고 익히려 노력하며 체화된 거 같아요. 철원군 근무 당시 ‘철원군민헌장문’을 지었고, 철원군 ‘6.25 참전 기념비’와 ‘베트남 참전 기념비’, ‘철원향교헌성비’ 등 많은 비문의 문안을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부군수 시절 2005년 9월에 월간 문학세계에서 《바딘 광장의 재스민 향기》로 수필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습니다. 작품은 베트남 방문 때 느낀 공직자 호치민의 인간적인 매력과 전쟁을 통해 교훈처럼 된 ‘호치민 정신’을 바딘 광장 한 모퉁이 호치민 누옥 앞에 피어있는 재스민 향기로 그리움을 표현했습니다. 나의 문학적 성장은 공직자의 삶과 떼어낼 수 없습니다. 

Q. 등단 후 총 6권의 책을 펴냈습니다. 어떤 책인가요?

《울음산의 메아리》 (2009), 《눈길에 새긴 구름의 발자취》 (2015), 《관중평원에서 진시황제를 만나다》 (2018), 《내 영혼의 아리랑》 (2020), 《나의 섬나라 역사문화 탐방기-제주도/일본》 (2022)입니다. 

도의원 시절에 쓴 《울음산의 메아리》는 지나간 공무원의 삶을 회고한 자서전 겸 수필입니다. 왕건에게 쫓겨 피신한 궁예가 저항하며 통곡했다는 철원 울음산 기슭을 회상하며, 고향에 대한 애틋한 향수와 함께 척박한 환경 속에서 부대끼며 터득해 온 삶의 편린(片鱗)을 담백하게 그리고, 반평생 공직생활에 대한 추억도 소박하게 그렸습니다.

강원도문화원연합회 사무처장 시절 펴낸 수필집 《눈길에 새긴 구름의 발자취》는 60편의 수필을 통해 인생길을 걸어오며 발걸음을 어지럽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고, 남은 생애를 올곧게 살고자 하는 다짐을 담았습니다.

춘천수필문학회장 시절 펴낸 세 번째 작품집 《관중평원에서 진시황제를 만나다》는 2016년 중국 시안을 돌아보고 엮은 인문학 여행기입니다. 이 작품은 수필이면서 소설체를 가미하고 맛깔나는 여담도 곁들여서 역사 유적과 고대사, 인물을 알아가는 재미를 더했습니다. 단순한 여행기록을 넘어 중국의 고대사를 인문학의 관점으로 나름 깊게 관찰하고 내 나름 현대적으로 견해를 덧붙였습니다. 여행코스별로 19개 소제목으로 나눠 기록하고 관련 지도와 사진, 자료를 삽입해 생동감을 더하는 등 정성을 많이 들였습니다. 여행자에게는 가이드북으로도 손색없을 겁니다.

네 번째 작품집 《내 영혼의 아리랑》은 ‘구름과 티끌의 노래’라는 부제를 달고 70 인생의 여정이 담았습니다. 61편의 글들이 곧 나의 영혼이에요. 작가로서의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새로운 발걸음입니다. 돌아보면 천둥 치는 개벽의 아침도 있었고, 춘삼월의 풋풋한 사랑도, 코로나보다 더 황당한 곡절도 많이 겪었습니다. 그래도 모든 순간마다 영혼이 깨어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Q. 올해 나온 두 권의 책은, 그 간의 문학적 성장이 집약된 듯합니다.

《나의 섬나라 역사문화 탐방기-제주도/일본》은 칠순을 맞아 가족과 함께 한 여행이 계기가 됐습니다. 단순히 제주도와 일본 여행기가 아니라 다채롭고 깊이 있게 보며 느낀 감성을 기록하려고 했습니다. 제주도와 일본을 여행하기 전 미리 읽어보고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제주도 맛집 이야기부터 금능해변, 우도, 성산일출봉 등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제주도만의 전통 그리고 월드컵 경기장, 사려니숲길, 법환마을, 강정마을, 해군기지 등 제주의 다양한 모습을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또 제주 4.3 평화 기념관을 둘러보고 현대사를 다시 돌아보기도 했죠.

일본 여행에서는 음식문화 소개부터 사무라이와 게이샤 문화의 기원 등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 지리적 생성과정과 풍토, 역사 등을 자세히 소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부족하지만 이 책을 통해 일본의 문화와 역사를 어느 정도는 잘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두 책이 특별한 건 집필 과정에서 질병과 낙상 후유증 등 큰 고통 속에 태어났다는 점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칠 수 있었던 건 세상의 배려와 가족, 이웃의 염려 덕분입니다. 그런 따스함이 인문학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Q. 대부분의 책이 춘천의 대표적인 출판사 ‘산책’에서 펴냈습니다.

예 참 감사한 일입니다. 문화원 사무처장 시절 문화현장에서 함께 여러 가지 일을 했습니다. 그 인연으로 두 번째 책 《눈길에 새긴 구름의 발자취》부터 계속 그곳에서 책을 펴내고 있습니다. 지역 출판의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제주도 여행길의 김영칠 수필가와 아내 김정순 씨      사진 제공=김영칠

Q. 지역의 어른으로서 고민 많은 청년들에게 조언 부탁합니다.

내 좌우명이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에 나오는 국궁진췌(鞠躬盡瘁)입니다. 조금도 후회됨이 없이 몸이 부스러지듯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뜻이지요. 오랫동안 공직에 있으며 많은 후배들을 겪었습니다. 싹수 있어 보여 제대로 키워보려고 혹독하게 일을 시킨 ‘시보’가 있었지요. 요즘 기준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지시와 요구도 많았지만 일을 똑소리 나게 처리해서 제가 되려 미안했었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러 잊고 살았는데 어느 날 후배가 고향의 부군수로 발령받았다며 전화를 했습니다. 가슴이 뛰고 감격스러웠습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지만, 노력은 배신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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