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에 누가 의견을 달아놓았다

악플이다 고맙습니다 진심

그것도 귀하게 얼른 눈에 집어 넣는다

악플러는 좋은 시가 있다는 문학사의 환청에

시달리는 구식 문학주의자일 것이다

사랑스럽다

넘치도록 나는 존중하겠다

어제는 부람산 둘레길을 횡단하고

산 밑 절에서 비빔밥을 얻어먹었다

연등 아래 나타난 보살과 어린아이들이

줄줄이 핀 금낭화처럼 반짝거렸다

비빔밥이 시고 미역국이 시고

툭툭 잘라놓은 붉은 수박이 시고

산바람 섞인 일회용 커피에도 반 배

시를 쓰기 때문에 시인이 아니라

뭇언어에 진심이 꽂힐 수 없다는 사실을

눈치 챈 사람이 시인이 아닐까? 이상

구식 시인의 재량으로 떠들어 보았음

박세현 시집 《나는 가끔 혼자 웃는다》 중에서

 

진심이 없다는 것을 눈치 채는 사람이 시인인가? 시는 어디에나 있는데 그걸 찾는 사람이 시인인가? 구식 문학주의에서는 무어란 말인가? ‘시’라는 정의가 존재했었지만 이제 시는 그 무엇도 아니라는 인식, 시를 허물어뜨리는 시인의 인식 자체가 시가 되고 있다. 보는 대로 시를 쓰는 시인을 본 적 있다. 소문만으로 들었던 그를 만나기 전에는 시란 소재를 찾고 서사를 찾고 구체성을 찾고 퇴고하고 인고의 끝에 탄생하는 그 무엇이었다. 신식 문학주의란 무엇인가? 문학주의를 걷어치우더라도 신식은 무엇인가? 발화의 순간 수신자에게 그대로 동화되는 것이 신식인가? 도대체 시란 무엇이냐? 이 시대에 시란 가능한 것이냐? 그냥 나 혼자 헛소리다. 신경 쓰지 마시라. 난 아직 눈치 채려면 먼 사람이다. 다만 나는 가끔 혼자 웃을 뿐이다.

한승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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