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 (전 정의당 강원도당 부위원장)

속이 좋지 않은 편이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책가방을 싸서 집을 나서면 배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중고등학교 때는 버스 통학을 했는데 배가 아파 중간에 급하게 내린 적이 많다. 무작정 차에서 내렸지만, 화장실을 찾지 못해 무진 애를 먹었었다. 

공중화장실은 속이 불편한 나와 같은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시설이다. 단지 속을 비우는 것 말고도 더러워진 옷과 손을 닦아낼 때, 아이 기저귀를 갈 때, 손님과 만남을 앞두고 옷매무시를 단정히 해야 할 때, 그밖에 야외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불편한 상황을 안정적으로 대처할 때 꼭 필요한 공간이다. 

공중화장실은 예전보다 더 많아지고 깨끗해졌다. 하지만 모든 시민이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기본구조에 있어서 대다수 공중화장실은 사실상 ‘남성처럼 보이는 남성’과 ‘여성처럼 보이는 여성’만을 허용하고 있다. 성별 이분법에 충실한 화장실에서 성소수자는 화장실을 이용하기 매우 어렵다. 트랜스젠더 절반가량이 화장실에서 차별을 받은 경험이 있어 공중화장실 이용 자체를 포기한다. 밖에서는 목이 말라도 물을 잘 먹지 않고, 방광염에 걸릴 확률도 높다. 머리가 긴 남성, 머리가 짧은 여성 등 성역할에 부합하는 외모와 신체를 가지지 않은 이들도 마음 편히 화장실을 이용하기 어렵다. 

지난달, 춘천 의암공원에서 제2회 춘천퀴어문화축제를 열었다. 조직위원으로 축제를 준비하면서 의암공원의 공중화장실을 살펴보았다. 역시나 성별 이분법에 충실한 화장실이었다. 성별 구분이 없는 성중립화장실을 별도로 설치하기에는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다. 아쉬운 대로 축제참여자가 조금이나마 마음 편히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인근 상가를 돌며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성중립 팻말이라도 걸 수 있는 화장실을 섭외코자 했으나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성소수자에게 안전한 화장실은 모두에게 안전한 화장실임에도 불구하고 설득에 실패했다는 것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장애인도 공중화장실을 이용하기 어렵다. 전보다 장애인 화장실이 많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공간이 비좁고 청소도구가 쌓여있어 휠체어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시각장애인에게 필요한 음성안내도, 호출벨, 점자 안내판과 안내 블록이 미비한 경우도 많다.

공중화장실의 위치가 어둡고 후미진 곳에 있어 안전에 취약한 경우도 많다. 물론 아무리 조치를 잘한다고 해도 화장실 구조만으로 안전을 온전히 보장하기는 어렵다. 최근 서울 신당역 화장실에서 일어난 스토킹 살인사건은 사람이 많이 다녀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지하철역 내 화장실이었지만 약자에게 안전한 공간이 되지 못했다. 성별 권력관계가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 속에서 강자인 남성 가해자가 자신보다 약한 권력을 가진 여성 피해자를 살해한 이 사건은 전형적인 여성혐오 범죄임이 틀림없다. 이제는 정말 범죄로부터 안전한 공중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공중화장실은 모두가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성별 이분법에 갇힌 공중화장실의 구조는 성소수자를 배제하며, 성 평등한 사회문화를 만드는 데 방해가 된다. 남성에게도, 여성에게도, 성소수자에게도, 장애인에게도 불안하고 불편한 화장실을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공중화장실을 위험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모든 시민은 공중화장실을 마음 편하게 이용할 권리가 있다.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