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학] 이병욱의 ‘내 젊은 날, 춘천에는’-제2회
[삶과문학] 이병욱의 ‘내 젊은 날, 춘천에는’-제2회
  • 이병욱(작가, 춘천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22.10.3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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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욱(작가, 춘천문인협회 회원)

아폴로 싸롱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처럼 돼 버리는 탓에, 여자애들은 대개 고개 숙인 모습으로 들어섰다. 자신에게 일제히 몰리는 시선들을 의식한 행동이다. 다만 얼굴이 아주 예쁘게 생긴 경우에는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나 보란 듯이 똑바로 쳐들고 들어왔다. 물론 극히 드문 경우였다.

그런데 그 여자애는 달랐다. 누가 봐도 아주 예쁘게 생긴 얼굴인데 늘 고개 숙이며 들어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벽 옆의 빈자리를 찾아 앉은 뒤 시집(詩集)을 한 권 테이블 위에 펴 놓고 보는 모습이었다. 어둑한 실내라 벽 곳곳에 작은 전등이 달려있는데 그 빛을 이용하는 것이다. 긴 머리를 정갈하게 늘어뜨린 채 시 감상에 몰두하고 있으니 지하공간의 그 누구도 말을 붙이기 힘들었다. 차 주문을 받는 종업원마저 말을 붙이지 않는다면 여자애는 아마 100% 미동도 않는 자세였을 게다.

그 여자애는 종업원한테 주문을 말하는 대신 종이쪽지에 써서 건넸다, 항상 ‘블랙커피 한 잔’에 신청 음악은 린 앤더슨의 ‘Rose Garden’이었다. 

I beg your pardon, I never promised you a rose garden

Along with the sunshine there’s gotta be a little rain sometime

When you take you gotta give so live and let live or let go

I beg your pardon, I never promised you a rose garden

(나는 당신의 용서를 간청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장미 정원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햇빛과 함께 언젠가 비가 조금 내립니다

당신이 그렇게 살아야 하고 살게 하거나 놓아 줘야 할 때

나는 당신의 용서를 구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장미 정원을 약속한 적이 없습니다)

 

경쾌한 리듬으로 시작되는 그 음악이 나오면 미처 그 여자애의 등장을 몰랐던 애들까지 뒤늦게 상황을 깨닫고 ‘예쁜 그 여자애가 어디 앉았나?’ 둘러보았다.

싸롱에 들어오는 여자애들은 대개 둘이나 셋씩이었는데 그 여자애는 늘 혼자 들어와 시집을 보았다.

내 친구 녀석이 가만있기 힘들었다. 음악 감상은 핑계이고 ‘걸 헌팅’할 속셈으로 아폴로 싸롱에 오는 녀석이라 기회를 엿봤다. 하지만 접근조차 허용치 않는 것 같은 그 여자애의 고고한 분위기에, 한 달 넘게 망설이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었다. 싸롱 오기 전 나하고 운교동 동부시장 대폿집에서 막걸리 한 잔 걸친 덕이 아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겠다. 녀석은 여자애의 한마디 말에 두 손 들었다.

모처럼 용기를 내 그 여자애한테 다가가 말을 붙이는 것 같더니 얼마 안 돼 뒤통수를 긁으며 돌아온 녀석이 내게 털어놓은 사태의 전말이다.

“내가 공손하게 말을 건넸어. ‘저… 잠깐만 대화 좀 나눌 수 없을까요? 그러자 여자애가 고개도 들지 않고 작은 목소리로 이러는 거야. ‘저는 지금 책을 보고 있거든요.’ 그러고는 더 이상 말을 않으니 내가 두 손 들고 돌아올 수밖에.”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녀석의 낭패를 위로해주었지만 동시에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음악 소리가 요란한 곳에서 시들을 감상하다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혹시 연출이 아닐까? 자신은 외모도 아름답지만 내면의 미(美)도 갖췄다고 과시하고 싶어서 말이다.’

 내 젊은 날에 친구 녀석과 예쁜 여자애와, 아폴로 싸롱이 있었다.

이병욱(작가, 춘천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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