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면 반칙이다 /  류근 / 해냄출판사

‘창이 넓은 이층 국숫집에서 판 모밀을 먹으며 나는 좀 전에 읽었던 시를 생각하였다. 내게서 떠나버린 시가 마치 냇물에 놓쳐버린 고무신처럼 저 멀리 남의 영혼에 흘러가 닿아 있었다. 나는 조금 서럽고 그리웠다. 내가 나의 시를 잃고 떠도는 동안 너희 또한 나를 잃고 얼마나 서럽고 그리웠으랴.’

‘나쁜 권력자들이 우리 삶에 얼마나 지독한 해악을 끼치는지, 자본과 결탁한 권력, 권력과 결탁한 언론이 우리 공동체와 역사에 얼마나 돌이킬 수 없는 독극물을 섭식케 할 수 있는지 뼈저리게 각성하는 세월이다. 살아갈수록 가난해지는 사람들과, 희망과 전망을 잃은 젊은이들과, 미치지 않고선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노인들이 다 나의 이웃이다. 모국어를 공유하고 있는 공동운명체. 나는 슬퍼하고 또 슬퍼한다. 우리는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 류근 著, 진지하면 반칙이다 中

오늘 아침 대한민국은 안녕한가. 매일 아침 해가 뜨는 것처럼 하루하루 새로운 재난으로 빛나는 대한민국이다. 빵 반죽기로 빨려 들어간 몸이거나 골목길 압사 사고라니. 하도 어이가 없어 황당한 6, 70년대 후진국형 재난이 줄을 잇는다. 여기서 후진국형이란 충분히 막을 수 있고, 각종의 매뉴얼에 방치 차원의 작업요령이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아 일어나는 사고를 뜻한다. 게다가 재난이야 예기치 못한 일로 일어나 수 있는 것이지만, 요는 재난을 대하는 태도가 더 재난스러운 것이다. 대통령으로부터 총리, 시장, 해당 장관 등 어느 한 사람 잘못했다는 사람이 없다. 우리가 구리다고 손가락질하던 조선조 왕들도 가뭄이거나 장마조차에도 자신의 책임을 물 줄 알았다. 비가 안 오는 것을 어떡해, 내가 신인가? 하며 벌건 얼굴로 쩍벌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아마 알고 있는 것 아닐까. 겨우 발꿈치 세우고 버티고 있는데 잘못을 자인하는 순간 다 무너져 내린다는 것을.

세상이 이렇게 진지한데 진지하면 반칙이란다. 머리는 백발이지만 언제나 시대의 명랑을 믿고 긍정을 퍼뜨려 나가는 시인 류근의 책 제목이다. 류근 시인은 시인에서 은퇴를 했다고 얘길 하지만 나는 이적지 이렇게 뜨겁게 시인을 살고 있는 이를 보지 못했다. 김소월, 백석과 함께 자신을 오산고 출신 시인 3인방으로 입도선매를 해놓지만, 시인이 어떻게 현실을 외면할 수 있으랴. 가장 힘없고 작은 것에서 출발해야 하는 시는 그래서 가장 변방에 밀려나고 어둠에 잠긴 것부터 바라보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부당한 권력에 항거하는 시인의 고군분투를 보아 왔다. 누군들 제 손에 똥 묻히는 게 좋을 것인가. 이전투구의 전제는 자신이 먼저 개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본인도 ‘정치와 정치인들에 시선이 자꾸 머물게 되었다. 내 문장은 점점 더 졸렬해지고 경박해지고 천박해지기 시작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러하니 그가 키우는 들비 얘기와 함께 술이 이어지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사태이다. 어찌 잠깐이라도 제정신으로 살 수 있겠는가. 지지난 미혹의 세월호 정권도 그러하지만 복종과 주술의 정권은 또 일러 무엇 하랴. 어찌 고개를 넘으면 더 큰 고개가 나온다는 것인지. 시인의 말처럼 모국어를 공유하는 슬픈 공동체가 아닌가. 몇 개월 사이에 햇빛이 그러하듯 사방팔방에 모든 국격이 내려앉고 있다. 무슨 건물 해체전문가들이 모였나 보다. 이러함에도 뒷짐을 짓고 이해득실을 따지는 또 수많은 지식인들의 모습을 본다. 경험상 뒷짐은 어떠한 전진도 고무하지 않는다. 늘 뒤에서 판세를 읽고 눈치를 보는 자세가 우리 노년과 먹물들의 뒷짐이다. 나는 그래서 류근 시인을 존경한다. 그의 맑은 영혼과 그의 계산되지 않는 싸움법을 존경한다. 그는 늘 17대 1의 싸움을, 무모를 외면하지 않는다. 오늘 아침에도 그는 자신의 손을 씻을 것이다. 씻으면서 생각할 것이다. ‘이 허상뿐인 진지와 심각의 표정들을 들비의 꼬리처럼 사뿐사뿐 쾌도난마 해 주리라.’ 

* 참, 한 줄 독서평, 가짜 진지는 필요 없다. 진지하게 읽다가 시인이 깔아 놓은 작고 반짝이는 언어에 저절로 밝은 마음을 갖게 되는 책. 근데 넘 진지했다 시바.

최삼경(작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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