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카페에 음료 적립 청소년은 무료로 이용
카페 28곳 참여… 기부 확산 등 많은 관심 필요
“맡겨놓은 빵집·맡겨놓은 식당 등으로 확장하고파”

올해도 어김없이 수능의 시간이 다가왔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무거운 긴장감 속에 지내온 학생들이 잠시 쉬어갈 곳이 없을까? 수능을 마치고 얻은 짧은 해방감을 친구와 함께 즐길 곳이 없을까?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학교와 집 근처라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런 학생들에게 ‘맡겨놓은 카페’를 추천한다. 

‘맡겨놓은 카페’는 2022년 ‘춘천행복교육지구 청소년특화사업’으로 추진되어, 춘천의 6개 중간지원조직 공동사업TF ‘사이사이’(춘천문화재단·춘천사회혁신센터·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춘천시협동조합지원센터·춘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춘천지역먹거리통합지원센터)가 동네 곳곳의 카페를 활용하여 시민들이 청소년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응원하자는 취지로 마련한 청소년 환대 프로젝트이다.

사업은 (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이하 마자센터) 윤요왕 센터장이 이탈리아의 나눔 운동 ‘카페 소스페소(Caffè sospeso)’에서 아이디어를 따와서 제안했다. ‘소스페소(sospeso)’는 이탈리아어로 ‘미정’, ‘연기되다’, ‘미루다’ 등을 뜻하는 말이다. 커피가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탈리아에서 가난한 익명의 사람들을 위해 커피 한 잔 값을 더 계산해 마음을 나누는 활동을 말한다. ‘청소년’과 ‘카페 소스페소’가 결합해,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가 탄생한 것이다.

‘맡겨놓은 카페’는 지난 6월부터 시작됐다. ‘맡겨놓은 카페’에 손님으로 온 시민이라면 누구나 청소년들을 위해 음료를 미리 결제하여 적립할 수 있다. 청소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면 카드에 남길 수 있다. 이렇게 적립된 음료를 14세 이상 19세 이하의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청소년들은 자신이 고른 음료를 적립해준 시민의 메시지 카드에 감사의 답장을 적는다.

11월 현재 카페 28곳이 참여 중인데 카페들 대부분이 학교 주변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 지난 4일까지 총 적립은 1천504잔이고 청소년 이용은 991잔이다. 청소년 무료 이용 요일은 카페마다 유동적이다. 

유봉여중·고 인근에 자리한 ‘카페희랑’의 김영수(36) 대표는 “취지가 정말 좋아서 흔쾌히 참여했다. 카페 입장에서도 카페를 홍보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다. 또 개별 카페가 영업적으로 손해를 볼 것도 없다. 소상공인을 위해서도 정말 좋은 아이디어다. 사업 초기에는 홍보 부족으로 찾는 아이들이 드물었는데 최근에는 많이 알려져서 많이 찾는다. 우리 카페는 모든 영업일에 청소년 무료 이용이 가능한데 주로 유봉여중·고 학생들이 공부하러 와서 또 학원버스를 기다릴 때 잠시 숨을 돌리며 적립된 음료를 무료로 마신다. 홈페이지에서 적립 상황을 확인하고 오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솔직히 처음에는 기부가 있을까? 걱정했는데 학교 선생님들·직장인·대학생 등 다양한 시민들이 꾸준히 적립하는 걸 보고 놀랐다. 적립카드에 학생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도 정성껏 남긴다. 학생들은 무료로 먹을 수 있다는 것에 쭈뼛거리며 고마워한다. 적립카드 뒷면에 감사의 마음을 적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 수능을 마친 학생들이 머리 식히며 잠시 쉬다 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유봉여고 유윤주 학생은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고3인데 덕분에 좋은 커피 잘 마시고 잠시 숨돌리고 갑니다. 적립해주신 분 당부대로 떨지 않고 차분하게 수능 잘 볼게요”라고 말했다. 김민소 학생은 “응원의 글 감사합니다. 이번에 이런 카페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저도 청소년에서 곧 성인이 될 텐데 이런 마음을 이어받아 나누면서 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지속가능을 위한 고민들

지난달에는 공동사업TF ‘사이사이’ 관계자들이 모여 ‘맡겨놓은 카페’ 평가 워크숍을 열고 지속가능을 위한 고민을 나눴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역 내 기업 참여 등 기부 활성화 방안 △카페 운영자 간담회 등 당사자 조직화 △적립량이 많은 카페는 배달이벤트 등 시도 △‘청소년 홍보단’ 등 청소년 특성에 맞는 홍보 필요 △기획 및 운영과정에 청소년 당사자 참여 필요 △기부한 어른과 이용한 청소년 간의 또 다른 연결성 찾기 △적립현황을 카페 밖에서 볼 수 있도록 개선 △맡겨놓은 빵집 등으로 확대 △청소년 관련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기능 확대 △사업 연속성을 위해 실무운영을 담당할 실행파트너 필요 등 다양한 발전 방향을 논의했다.

마자센터 마을공동체 유현희 팀장은 “이 사업의 핵심은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이 청소년에게 보내는 선한 마음에 있다. 어른들은 카페 음료 한 잔 주는 것에서 시작해 편하게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청소년들은 나를 위해 한잔의 음료를 맡겨놓은 어른들의 선한 마음을 느끼면서 어른이 된 뒤 청소년을 위한 기부 활동에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어른들과 청소년 사이에 보이지 않는 비대면 연결고리 같은 것이 생기고, 이것이 쌓이고 확장되면 훨씬 감동적인 춘천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마자센터 윤요왕 센터장은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사업은 춘천이라는 도시가 시민들의 작은 나눔으로 푸근하고 행복한 도시로의 전환을 실험하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꿈같은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맡겨놓은 카페’가 100곳, 200곳으로 늘어나고 시민들의 인식 속에 자리 잡아 음료 한 잔 기부하는 것이 일상문화가 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사업이 지속되고 확장되어 ‘맡겨놓은 카페’가 ‘맡겨놓은 빵집’으로 ‘맡겨놓은 한 끼 식당’ 등으로 다양해지고, 대상도 청소년을 넘어 어르신들로 넓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행복한 도시를 만들려면 큰 사업과 큰 정책도 필요하지만, 시민들의 소소한 힘이 모여서도 가능하다.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라고 강조했다. 적립 및 이용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https://ccycafesospeso.modoo.at/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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